서양이 동양을 이긴 힘 '대포와 배'

2010-09-29 08:25
카를로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출간

서양이 어떻게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아시아 역사가들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고민해온 문제다.

15세기 중반만 해도 유럽은 1천여 년 간 기독교 문화를 지켜온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투르크인들에 경악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유럽은 15세기 후반부터 대항해 시대를 열어 젖히고 동양을 압도해 나간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의 저서 '대포, 범선, 제국'(미지북스 펴냄)은 근대 초기(15-18세기) 유럽의 팽창 원동력을 경제적 동기와 기술적 수단의 측면에서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대포와 선박 기술의 진보가 유럽이 그동안의 열세를 단번에 만회하고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중국에도 14세기 중반 이전에 이미 대포가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대포 기술이 나날이 발전한 반면 중국에서는 대포의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중국이 우수한 대포를 만들지 못한 것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관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농본주의 유교 문화가 기술의 진보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포가 아시아인들에게 경악과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론(스리랑카) 주민들은 포르투갈인들이 보유한 대포에 대해 "천둥소리가 나는 큰 대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나온 포탄은 십 리를 날아간 후 대리석으로 만든 성을 부술 수 있다"고 기록했다.

저자는 그러나 대포와 선박을 앞세운 유럽인들의 군사적 우위 시대가 동양은 물론 서양에도 악몽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서양에서는 기술이 목표가 되면서 철학과 사회적.인간적 관계가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으며 동양은 서양의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서양식 사고와 행동 방식을 흡수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최파일 옮김. 236쪽. 1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