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불법 논란 재점화되나
2010-08-11 16:26
(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일병합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입증할 수 있는 조약 문건을 공개함에 따라 향후 '병합 무효' 논란이 재점화될 것인지 주목된다.
'한·일병합 무효' 논란은 양국이 1960년대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진행하면서부터 첨예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렸던 문제로 현재까지도 명확한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에 공개된 일본측 '한일병합 조서'는 19010년 8월29일 일왕(천황)이 한·일병합을 공포한 조서로 같은 해 8월22일 체결된 한·일병합 조약을 발효시키는 비준 문서이다.
문제는 일본의 비준문서와 이에 상응하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조서(칙유)가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어 양국의 합의 아래 병합이 이뤄졌다는 일본측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됐다는 점이다.
일왕이 공포한 조서에는 국새와 '무쓰히토(睦仁)'라는 일왕의 이름 서명이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순종황제의 칙유에는 국새 대신 어새가 날인돼 있는데다 '이척(李拓)'이라는 이름이 서명돼 있지 않은 차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문서가 양국 간에 맺어진 병합조약이 불법적으로 이뤄졌음을 증빙하는 확실한 증거자료로 인정받게 될 경우 국제 무대에서 일본 측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한일병합 조약의 불법성 여부나 효력을 문제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태진 교수는 "우리 측 비준 문서 자체에 흠결이 있으므로 한일병합조약은 발효조차 하지 않았고,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병합의 합법성 여부를 따지는 해묵은 논쟁이 이 문건으로 인해 일단락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무엇보다도 병합의 불법성 여부를 둘러싼 양국 간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
한국은 병합조약은 물론 한일의정서(1904), 을사늑약(1905), 한일협약(1907) 등 한일병합에 이르는 일련의 조약들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불법조약이라는 점에서 원천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조약 자체는 합법적으로 체결됐으나 한국의 독립으로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궁극적으로 '불법적인 병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양국은 결국 지리한 협상을 거쳐 병합 논란에 대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애매한 문구로 정리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도 지난 10일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은 간접적으로 인정했지만 병합 과정에서의 강제성은 물론 병합 과정의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 역시 우리 측에 유리할 수 있는 사료가 공개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교부는 "(한·일병합 조약서에) 순종황제 서명이 없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정부는 한일병합 조약이 우리 국민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됐으며,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기존 입장만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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