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중국은 누구의 미래인가?

2010-07-24 14:15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에게 원어민 중국어 선생을 붙인 지 두 달여, 드디어 중국어 특유의 성조를 능숙하게 발음하는 아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내도 흐믓한 눈길을 감추지 못한다.

유명한 투자자 짐 로저스가 "앞으로 큰 돈을 벌려면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라"고 했다니, 이를 몸소 실천하는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학부모 대열에 낀 우리 부부는 얼마나 행복한 부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이 행복감으로 당분간은 이혼 걱정 안 하고 오직 앞날이 창창할 아이의 장래를 화제로 언제까지고 왁자지껄 웃으며 즐겁게 지낼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이렇게 내심 충만한 기분을 느끼며 느긋하게 인생을 향유하고 있던 어느 날, 느닷 없이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이 산통을 다 깨버렸다.

이메일은 농협중앙회에서 계약직 비서로 일하다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의 와중에 회사를 그만 두고 중국 유학길을 떠났던 20대 여자 후배가 보낸 것이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해외 인력 파견 사업에 용기 있게 참여해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중국에 머문 지 채 1년이 안 되었을 시점이었다.

헉헉 숨이 막힐 듯 긴박감이 느껴지는 이메일은 자못 심각한 사연으로 점철된 장문이었다. 이메일을 읽으면서 '뭔가 단단히 안 좋은 일을 당했나 보구나.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생긴 게 틀림없어'라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건 사고 내용은 없는 이메일의 요지를 간추리면 이렇다.

국내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니 해외에서 일자리를 개척해야 하나 싶어 선택한 중국행이었는데, 6개월 정도 지나자 회의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불투명한 장래 전망은 흘려 듣겠는데, 아주 확실하게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건 '저임금 문제'다. 중국에서 사귄 현지인 친구들은 우리 돈 2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고 있는데, 이 월급으로 중국 대도시에서의 생활은 택도 없다.

현지인도 아닌 터에 어렵사리 중국에서 자리 잡아봐야 우리나라 70년대 초반 수준인 고작 100만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월급 생활이라니. 뒤늦게 아차, 싶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어찌해야 하나? 당장 짐을 싸야 하나? 좀 더 눌러 앉아 암울한 저임금의 장래를 외면한 채 중국이란 동네를 더 배워야 하나 갈등이다. 무슨 이야기건 답신을 해 달라. 앞날이 캄캄해서 미치겠다.

그랬다. '관광객으로 골프치고 돌아다닐 때는 저임금과 저물가, 환율 차이의 덕을 톡톡히 보며 즐거웠지만 막상 그 월급을 내가 받아야 한다면?'하는 생각은 나도 못해봤다.

신문ㆍ방송에는 연일 거시경제적 담론이나 사업가적 입장만 횡행할 뿐 미시적 현실이나 개인적 형편은 거의 다뤄지지 않아 잘 몰랐다. 아이쿠, 이런! 중국이 소비시장으로서 한국 기업의 미래일지 모르지만, 개인들의 일자리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외려 정반대, 과거로의 회귀였다. 이런 현실 문제를 깜빡했다.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친다면 투자자나 사업가로 키운다는 포부여야 쓸모가 있지, 그렇지 않다면 별 볼일이 없다는 결론이다. 중국어는 한국말을 배운 중국 원어민이 훨씬 더 잘할 것도 틀림없다. 아뿔싸다.

나는 겨우 이런 답신을 보냈다. '그냥 젊어 고생 사서 한다고 생각하고 낮선 곳의 체험을 즐겨봐라. 험하더라도 세게 구르고 와라. 단, 하루하루 일기를 써라. 훗날 고생한 이야기를 엮어 책이라도 내야하지 않겠니?'

차마 '됐다. 짐 싸서 당장 귀국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당장 한 달 월급이 급한 후배인데…. ' 이래 저래 나의 답신이 '비겁한 변명이었다'는 생각에 괴롭고 중국이 과연 누구의 미래인가, 회의감에 빠지는 요즘이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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