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관리제 부작용 속출..."획일적 관리 가능해?"
2010-07-20 18:16
(아주경제 권영은 기자) 지난 16일부터 서울지역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적용된 공공관리자제도가 시행 초기부터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제도의 핵심인 시공사 선정 과정의 공공관리자 지정이 10월로 유예되면서 충분한 준비없이 제도가 시행되 시공사 선정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또 시공사 선정과정의 공공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조합들이 '몰아치기 식' 시공사 선정을 진행하는 것도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더욱이 조합과 업계에선 사업지연에 대한 우려가 깊다. 460여개에 달하는 정비사업을 획일적인 정책으로 제대로 이끌어갈 지 의문이라는 게 골자다.
20일 업계 등에 따르면 공공관리자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시작된 시공사 선정 총회로 서울 지역 정비사업지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수주실적이 저조한 건설사들은 일감 확보를 위해 분주하고, 조합 측은 공공 개입이 오히려 자금줄을 압박할 것이란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
◆ "비리척결? 말도 안 돼"
조합설립인가 이후의 사업장은 물론, 추진위 단계의 사업장에서도 시공사 선정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공공관리 의무 적용구역인 추진위 단계의 재개발 사업장에선 내달 10일까지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조합원 동의서 징구가 한창이다. 조합설립 후 40~45일이면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비 규모가 총 수십조원에 달하는 강동 재건축 단지들은 건설사들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시공사 선정시기 유예로 인해 좀 더 유리한 입장에 선 조합들이 보다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시공사 선정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길동에 거주하는 A씨(56)는 "서울시가 클린업 시스템을 가동해 정비사업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일례로 우리 구역의 경우 시공사 선정 당시 총회에는 100여명이 참석했지만 서면 동의서로 과반수 이상을 채웠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인터넷을 통해 낱낱이 공개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노량진동의 B씨(30·여)는 "공공관리자제도를 보면 추진위원회와 조합 임원 등의 구성에 대한 자격 등 세부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며 "지금도 조합 임원 등 극소수 주도권자들이 사업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무슨 비리를 어떻게 없애겠다는 것인지, 그야말로 탁상행정의 표본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고 주장했다.
◆ "'재탕, 삼탕' 식 낡은 정책이 새 빛?"
전문가들은 공공관리자제도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낡은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시공사 선정과 관련한 세부내용은 지난 2006년 건설교통부장관이 고시한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기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대형사 한 관계자는 "공공관리자제도에서 명시한 '건설사 개별 홍보 금지'나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 선정기준' 등은 이미 2006년 건교부 장관이 고시한 내용에 담겨있는 내용"이라며 "시공사 선정 시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변경된다는 것 외에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중견사 한 관계자도 "종전에는 건설사가 고용한 홍보요원이 서면동의서를 취합했다면 앞으로는 조합이 고용한 홍보요원이 등장하는 등 또다른 비리가 양산될 소지가 높다"며 "별도의 조직을 만들기 외에는 서울시와 자치구의 인력만으로 460개에 달하는 정비사업장을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사업지연과 공익 저해에 대한 지적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개인의 재산권이 달린 중대한 문제를 두고 사업기간 단축에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오히려 사업이 지연될 소지가 높다"며 "또 정책이 너무 획일적인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자체적 원동력이 없는 사업장에는 공공의 개입이 바람직하지만 정비사업은 개인의 재산이 늘어나게되는 사업인데 공공의 기금이 투입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시 관계자는 "시공사 개별 홍보 금지 조항은 상징적인 부분의 의미가 크다"며 "50개 시범사업지구의 기금 지원은 순탄했으나 앞으로 사업장이 늘어나게 되면 감당이 어려워 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kye30901@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