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사 보고서, 차라리 오판이었다면…"

2010-07-05 16:13

(아주경제 김용훈 기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가 투자지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올 상반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상반기 코스피가 1%에도 못 미치는 상승률을 기록했음에도 92% 이상 보고서가 일방적으로 매수를 권한 것이다. 반면 분석기업 목표주가를 내려잡은 보고서는 고작 7%에 불과했다. 100개 기업을 분석했다면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종목은 7개도 안된다는 말이다.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을까? 국내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들이 무능한 이유로 오판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실상은 오판이 아니라 왜곡에 가깝다. 투자의견 매도 피해 보유나 유지 혹은 중립과 같은 애매모호한 투자의견으로 대신한 흔적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 실제 KTB투자증권, LIG투자증권, 대신증권, 미래에셋증권과 같이 발표 보고서 가운데 90% 이상을 투자의견 유지로 제시한 곳들도 있다. 국내 보고서의 '보유'는 '매도'나 마찬가지란 말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애널리스트들 스스로도 이를 모를리 없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런 현실을 가장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바로 애널리스트"라며 "하지만 부정적 보고서를 꺼려하는 펀드매니저와 기업 관계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고 토로했다. '매도' 등 부정적 견해를 담은 투자의견이 주고객인 펀드매니저, 투자자, 기업 관계자의 이익과 상충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유능한 애널리스트가 되려면 입을 닫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도 '정직한 보고서'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질병을 개선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애널리스트 공시제도조차 초안에서 대폭 후퇴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3월 애널리스트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체추천 의견 중 매도의견 비중 등을 담은 애널 공시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 반발에 초안을 대폭 수정, 결국 있으나마나 한 제도가 될 처지에 놓였다.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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