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줄이려다… 시세보다 더주고 산다

2010-07-05 19:46
솜방망이 처벌에 피해 더 늘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려진 '업(Up) 계약'을 부추기는 내용의 게시물. 최근 일부 부동산중개업소와 투기세력간 담합에 의한 업계약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업계약은 다운계약서와 반대로 실제 거래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된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아주경제 유희석 기자) 부동산 시장에서 실제 거래 가격보다 더 높은 값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업(UP)계약’이 시작된 가장 큰 이유는 매수자가 향후 양도소득세를 덜 내기 위한 방법으로 동원됐다.

즉 집을 사는 사람이 업계약서로 실거래가를 신고하면 향후 집값이 올랐을 때 시세 차익에 대해 부과되는 양도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억원을 주고 산 집이 향후 4억원으로 올랐다면 1억원의 시세 차익에 대한 양도세를 물어야 하지만 계약서에 4억원으로 기재돼 있다면 양도세를 전혀 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기를 위한 수단으로 업계약이 성행하고 있어 피해자 속출이 우려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김모씨(68)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32평형 아파트를 6억2000만원에 매입했다. 매입 당시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가 두달전 6억5000만원에 작성한 계약서와 한 보험회사에서 3억원을 대출받은 서류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시세가 6억5000만원을 넘고, 보험회사에서도 이를 인정해 3억원을 대출해줬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당초 매입자가 집에 일이 생겨 되팔아야 한다는 중개업소 관계자의 설명과 현재 시세보다 3000만원 이상 싸게 사는 것이라는 말에 급하게 계약서를 작성했고, 계약서 작성 후 2주 만에 잔금마저 지불을 완료했다.
 
김씨는 그 후 이 아파트의 실제 거래가격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실제 가격이 겨우 5억원 정도였으며, 그나마 최근 거래 실적이 거의 없어 가격 형성마저 어려운 실정임을 깨달았다. 결국 김씨는 시세보다 1억2000만원이나 더 주고 아파트를 매입한 셈이다.

◆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업계약

올해 초에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2월 12일부터 지난 2월 11일까지 실시한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과 관련해서 업계약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시세 차익을 얻어도 양도세를 물지 않아도 되는 조건에서 투자에 나섰던 사람들이 잔금 납부 일자가 다가오면서 분양권을 대거 시장에 풀었다.

이때 매도자들은 어차피 양도세 감면을 받을 수 있고 매도자들은 향후 양도세를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업계약 작성이 성행한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매도자가 비과세 요건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매수자에게 업계약서 작성 대가로 차액의 5~10% 정도를 요구하는 방식이 널리 통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인중개사들도 업계약을 부추기고 있다. 급히 집을 팔아야 하는 매도자들에게 업계약을 해야만 집이 팔린다며 불법을 권장하고 이를 대가로 매수자에게 일정 금액을 받아 챙긴 것이다.

한국공인중계협회의 양소순 실장은 “협회에서는 항상 협회 회원들에게 불법 계약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다”며 “은행원, 감정평가사들과 짜고 불법을 저지르는 중개업자는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 제2 금융권 울리는 '업계약'

최근 들어서는 업계약 작성의 이유가 조금 달라졌다. 세금 감면보다는 주식의 ‘단타 매매’처럼 짧은 시간에 시세 차익을 얻고 빠지기 위한 업계약 작성이 판을 치고 있다.

예를 들어 실제로 2억원에 산 주택을 3억원으로 구입한 것으로 꾸미면 은행에서 3000만~4000만원을 더 대출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전세 보금증금을 합하면 집값을 지불하고도 2000만~300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명의만 빌리면 내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쉽게 내 집 마련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에는 노숙자 등의 명의를 빌려 업계약서를 작성해 저축은행 등 제2 금융권으로 부터 60억원을 대출 받은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공인중개업자나 법무사, 은행직원 등이 가담해 주택 71채를 담보로 60억원으로 대출받아 집을 사고 남은 돈 35억원을 챙겼으며 구입한 집을 임대해 전세금도 가로챈 것으로 나타났다.

제2 금융권은 대출을 해주기 전에 현장을 꼼꼼히 살피기 보다는 서류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당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업계약 작성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집값이 오르면 크게 상관없지만 집값이 크게 떨어지면 업계약서를 믿고 대출해준 금융권은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피해 키우는 솜방망이 처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계속 되면서 업계약 방식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정부의 대책 마련이나 처벌 기준 등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업계약을 하다 적발되면 취득·등록세의 최대 3배를 과태료로 물게 된다. 양도한 사람은 양도세의 40%를 추가로 내야 한다. 중개업소가 불법을 알선한 경우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점점 확대되는 불법 이중계약을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업계약 작성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솜 방망이’ 처벌이라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중계약서 작성은 적발 자체가 어려운데다 처벌이 턱없이 약하다"며 "불법 계약 조사와 처벌을 강화하지 않는 한 불법 계약서 작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도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규제 강화에 나섰다. 올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감정평가사 및 감정평가법인에 대한 징계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이는 최근 업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감정평가사가 동원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평가의 위반행위 규정을 기존 27개에서 42개로 세분화하고 부실 평가를 하는 경우 감정평가사뿐만 아니라 감정평가법인에 대해서도 징계를 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에만 5명의 감정평가사가 부실 평가로 업무정지를 당했고 25명은 경고 또는 주의 처분을 받았다"며 "보다 성실하고 객관적인 감정평가를 할 수 있도록 징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xixilif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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