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恨'의 진화

2010-07-24 13:58

   
 
 
살아왔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눈물 뿌리는 장면이 주변에서 많이 줄어 들었다. 전염병 탓에 조실부모하고 남동생 둘 딸린 소녀 가장으로 험난한 세월을 살다가 무작정 상경,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셨던 필자의 어머니가 좋은 케이스다.

평생 비협조적이었던 (극히 젊잖게 표현해서) 남편의 핏줄인 무뚝뚝한 아들만 셋. 자식 복마저 지지리 없어 못 볼 꼴 다 보시며 사태수습까지 해가며 평생 워킹맘으로 살아가시느라 폭삭 늙으시는 와중에도 눈물 바람이 거의 없어졌다.

남들에게 아기자기 말 붙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살가운 딸내미도 없으신지라 하는 수 없이 장남이라도 붙들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실라치면 주야장창 길고 긴 사연에 몇 차례 눈물바람이 불었고 어떨 땐 주체할 수 없는 설움에 못이겨 "너도 마찬가지야. 이 **야"라며 맺힌 한(恨)을 토하시곤 했던 어머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서 이러한 한의 토로와 낯선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는 차분하고 후덕해졌으며 옛 이야기도 하하하 웃으며 즐거운 추억으로 눙치는 여유를 부리신다.

어느 날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다. 더불어 도대체 어머니 가슴에 맺힌 한의 실체는 무엇일까, 알고 싶어졌다.

서울 살이 50년이 가까워지자 먹고 사는 걱정만큼은 없을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독감 정도는 대신 앓아 주고 싶을 만큼 어여쁜 손주들을 거느리신 분. 그 분의 어느 기억 한 켠에 울컥 치솟아 오르는 '한의 마그마'가 들끓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한의 마그마는 어떤 연유로 차츰 사그라 들고 있는 것일까?

필자와 어머니, 우리 가족 전체의 행ㆍ불행감을 좌우할 이 의문점은 의외로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 실마리가 풀렸다. 실험의 변수인 비교대조군에 출신과 성분이 전혀 다른 존재, 즉 필자를 집어 넣자 풀이가 쉬워진 것이다.

필자가 어머니와 전혀 다른 점은 성별, 고향,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한 의견, 라이프스타일, 삶의 목표, 종교관 등 숱하지만 이 실험에 안성맞춤으로 '다른 점'은 마음 속 깊은 상처에 반응하는 태도다.

즉, 필자는 도시생활에 삭은 탓인지 마음의 상처가 한으로 진화할만큼 깊은 정을 나눠주었던 사람이 거의 없다. 지나친 정(情)붙임이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다. 게다가 그런 '정'이 사소한 의견 엇갈림이나 이해관계의 충돌로 금새 시들어버리는 이벤트를 너무 많이 겪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어머니는 이런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란 날 때부터 서로 떼려야 뗄수 없는 '혈연'과 같은 거라고 굳게 믿으셨다. '사람은 착하게만 살면 된다'고 요즘도 되뇌이시며 사람 자체에 대한 애정의 우물을 가이없이 파고 계시다. 바로 이런 차이다.

하지만 최근 어머니의 눈물 바람이 거의 없어진 걸 보면서 어머니도 변할 수 밖에 없구나, 생각한다. 남남이 만나 에티켓을 지키며 '넘치는 정'보다 '스마트한 이성'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그들 속에 내재한 곪은 상처가 '한'으로 표출되기에는 사람도 세월도 너무 변했다는 걸 자각해야 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시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안도한다.

하지만 필자도 글로벌한 디지털 커넥팅의 비인격적 전개에 불안해하며 살가운 '정'과 '정'에 파묻힌 부작용으로 '한'의 눈물바람을 쏟는 시절을 은근히 그리워한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