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촘촘한 긴장’이 보약
2010-05-31 11:06
하영제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
20여 일 동안 잠잠하다. 지난 5월 6일 충남 청양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구제역 추가발생이 없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과거 2002년에도 구제역이 진정되는 듯 싶다가 상당기간 이후에 추가 발생하였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빠른데다 사람 의복이나 신발, 차량 바퀴 등에 묻어 장기간 생존이 가능하다. 그 만큼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7월까지는 지속적인 집중소독과 차단방역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국 상황도 간단치 않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본은 현재 구제역이 200건 이상 발생하였다. 일본은 거리상 가까울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여행객이 왕래한다. 중국, 몽골, 베트남 등은 구제역이 상시 발생한다. 이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제 다시 구제역이 유입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초동대응에 실패하여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다 예방적 매몰처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어 발생 농장만 사후적으로 매몰처분하는 방식이다 보니 구제역 전파속도를 매몰처분이 따라가지 못하여 구제역이 이제 창궐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필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초동 대응과 방역체계를 본 받으라고 일본 정부를 비판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5시간이면 동남아시아, 24시간이면 지구 반대편까지도 갈 수 있는 세계화 시대다. 점점 인적․물적 교류가 빈번하고, 규모는 커졌다. 이미 ‘해외여행객 2천 만 명 시대’를 훌쩍 넘었다. 구제역 위험국가에서 입국하는 해외 여행객만 250만 명이다. 특히 올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농장주가 해외여행을 다녀 온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정부는 해외여행 후 입국하는 축산 농가에 대해 입국 즉시 방역 당국에 신고하고 공항과 항만에서 소독하도록 하는 등 국경검역을 대폭 강화하였다. 동시에 국내 발생지역 소독, 이동통제 및 전국적인 일제점검 등 모든 노력을 다하는 중이다.
하지만 방역당국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구제역 위험국가에서 입국하는 250만 명 모든 여행객을 일일이 소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국내 전체 축산농가 마다 방역요원이 지킬 수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구제역 방역은 최후의 보루인 축산농가들의 자발적 신고와 차단방역, 국민들의 협조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함께 할 때 최고의 성과를 낳는다.
이것이 호주가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구제역 청정국을 유지한 비결은 아닐까? 장기간 구제역을 성공적으로 차단한 미국, 뉴질랜드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빠른 시일 내에 구제역 청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방역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겠지만, 축산농가와 함께 국민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고향, 우리 농어업을 생각한다면 구제역 등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하는 나라와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조심하고 특히 외국이든 우리나라든 축산 농가 방문은 자제하는 성숙한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축산 관계자들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과거와 달리 축산업이 규모화․산업화되어가면서 관련 업종도 사료업체, 수의사, 인공수정사, 가축운송업자 등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해졌다. 영업범위도 마을 경계선을 넘어 여러 지역을 넘나든다. 각 분야의 전문가답게 방역에서도 투철한 직업의식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끝마무리에 있다고 한다. 진품과 가짜는 바느질 이음새를 잘 살펴보면 구분할 수 있다. 중간 중간에 끊어진 경우는 가짜라고 한다. 구제역 방역도 이와 마찬가지다. 조금만 중간에 방심하거나 허점만 있어도 구제역 조기 종식은 어렵다. 이제 마무리와 이음새가 중요하다. 농어업인, 국민, 축산관계자, 관계 공무원 등의 ‘촘촘한 긴장’이 보약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