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리즈 34] '3세 경영인' 이재용의 리더십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은 규칙적이고 계획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그의 일과는 사전 계획대로 진행됐다. 스스로 정한 스케쥴도 변경되는 법이 없었다. 실수나 실패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는 부하직원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적용했다. 이 선대 회장은 이러한 성격을 바탕으로 제왕적인 카리스마를 보였다. 그리고 이는 삼성 창업과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 선대 회장과는 상당 부분 다른 성격을 지녔다. 이 선대 회장이 '모범생' 스타일의 경영인이었다면 그는 '천재형'에 가까웠다. 무언가에 골몰하면 밤을 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삼성 사옥까지 출근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사업에 있어서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동물적인 직관력을 토대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패에 대해서도 너그러웠다. 오히려 "실패 없이는 성공도 없다"며 조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을 독려했다.
이 전 회장의 이러한 스타일은 지난 20년 동안 삼성이 빠른 속도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선대 회장 당시 교과서 적인 사업을 통대 기초를 다졌다면 이 전 회장은 창조적인 마인드를 통해 수성 그 이상의 성과를 냈다. 이들 전 수장들은 처한 상황과 시기에 부합하는 리더십을 통해 삼성을 이끌었다.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리더십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부사장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비해 준비된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이 선대 회장은 스스로 사업을 진행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경영자로서의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이 전 회장 역시 처음부터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오랜 기간 그룹 전체를 이끌어갈 재목으로서의 수업을 받지 못했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애초부터 경영 승계자로서의 수업을 받았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시작으로 일본 게이오대 MBA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과 비즈니스스쿨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공부를 했다. 실제로 이 부사장이 동양사학을 전공한 것은 "경영에 대한 공부에 앞서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 선대 회장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부사장에 대해 "경영에 자질이 있다"며 "선친의 경영철학을 어릴 때부터 익혔고, 일본.미국 유학 등을 통해 국게 감각도 갖췄다"고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 33세의 나이로 경영 실무에 나선 이 부사장은 10년 가까이 크게 내세울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증여' 등 경영 승계와 관련한 구설에 오르는 등 부정적인 인식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이 부사장이 삼성의 다음 세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기술 경영'은 이 부사장이 갖춰야 할 리더십 덕목 가운데 하나다. 과거 '스마트 팔로워'(Smart Follower)였던 삼성이 초일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천기술을 갖추고 미래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비서실 경영'을 넘어서야 한다. 과거 삼성은 회장과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의 역할이 중요했다. 선진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전 계열사를 일사분란하게 이끌어가는 관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서실 경영은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을 필두로 한 재무통들에게 힘을 실는 체제다. 재무전문가들은 그룹 관리와 기획에는 능할 수 있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능력은 다소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있었던 기술·연구직에 대한 중용이 필요하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이후 삼성은 이들 기술 인력들을 중용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의 CEO 가운데 4분의 1 상당이 비서실 출신이다.
'콘텐츠 경영' 역시 이 부사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입사 당시 이 부사장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e삼성' 사업도 콘텐츠 경영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 부사장이 콘텐츠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최근 애플의 '아이 시리즈'(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아이TV 등) 공습에서 알 수 있듯 콘텐츠 사업은 향후 삼성이 세계 일류의 자리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이 전 회장이 회장에 취임할 당시 삼성과 현재의 삼성은 그 규모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서는 최고지만 해외에서는 찬밥 신세였던 삼성은 20여 년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때문에 이 부사장은 빠르게 성장한 삼성의 위상을 지키는 한편 '이건희의 삼성' 그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 이 부사장의 활동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만 경영에서 한발 물러선 소극적인 모습보다는 과거 삼성의 '스타 CEO'들처럼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보직도 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자신만의 능력을 선 보임으로써 자연스럽게 삼성을 이끌어갈 리더로 인정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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