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손보, 겉으론 '이구동성' 속으론 '동상이몽'

2009-12-20 15:23
농협법 개정안 놓고 미묘한 '온도차'

정부가 농협보험에 대한 방카슈랑스 판매 제한 비율의 유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내용의 조정안을 제시한 후 보험업계 내부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손해보험업계는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반면 생명보험업계는 일단 국회 통과 여부를 지켜본 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농협공제를 보험사로 전환하는 내용의 농협법 개정을 추진하자 생보업계와 손보업계는 공동 보도자료를 수 차례 배포하는 등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특히 보험업법이 규정하고 있는 방카슈랑스 판매 제한 비율(동일 금융기관이 특정 보험사 상품을 25% 이상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10년간 유예키로 한 데 대해서는 불공정 특혜 조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정부는 보험업계의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농협보험의 방카슈랑스 판매 비중을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조정안을 내놨다. 생보업계와 손보업계 간의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다.

A생보사 관계자는 "정부안은 농협보험의 방카슈랑스 판매 비중 축소를 5년간 유예해주겠다는 것으로 보험업계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반영했다"며 "보험업계와 농협의 이해 관계를 떠나서 본다면 정부안은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생보업계는 농협보험이 변액보험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국계 B생보사 관계자는 "삼성 대한 교보생명 등 대형 3사는 시장점유율도 높고 판매 조직이 워낙 탄탄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계 생보사들도 다년간 변액보험을 판매해 온 노하우가 있어 농협보험에 쉽게 시장을 내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생보협회 관계자도 "그동안 농협공제가 불공정 거래를 자행해 온 만큼 생보업계와 손보업계가 특혜 배제를 요구하며 한 목소리를 냈지만 온도차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차피 같은 시장에서 활동하게 될텐데 보험업계와 농협이 이전투구하는 양상을 보인다면 양측 모두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에서 당초 농협 측 주장대로 10년 유예에 찬성한다면 계속 투쟁할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조정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일단 국회 통과 여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손보업계는 정부 조정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투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방카슈랑스 판매 제한 비율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농협보험에 자동차보험 시장을 상당 부분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광범위한 영업 네트워크망을 활용한다면 자동차보험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일 수 있다"며 "가뜩이나 자동차보험 부문에서 적자가 나고 있는데 농협보험까지 가세할 경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C생보사 관계자는 "손보사들이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을 이유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며 "내부 경쟁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시장 진입 장벽을 유지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