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와인 마니아 신났다
2005년산 브라이언트패밀리(Bryant Family)는 한 병에 600 달러 하던 것이 최근에는 345 달러로 가격이 급락했다. |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28일자 최신호에서 경기침체로 10 달러 이하의 저가 와인으로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고급 와인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와인시장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 통설이 깨진 것이다.
미국 뉴욕의 고급 와인 수입·유통업자인 빅터 슈워츠는 "고급 와인 산지인 프랑스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상황은 충격적"이라며 "협상만 잘 하면 최고급 와인을 싼 값에 사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와인을 취급하는 레스토랑들도 와인 매입의 호기를 맞았다. 미국 와인제조사 실버오크의 경우 한병에 100 달러에 팔던 '나파밸리 까베르네 쇼비뇽(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을 최근에는 30% 낮은 가격에 출시하고 있다.
데이비드 던컨 실버오크 최고경영자(CEO)는 "외식 횟수가 줄고 소비자들이 저가 와인으로 몰리면서 레스토랑들이 지난해 11~12월 이후 와인을 주문하지 않고 있다"며 할인판매 배경을 설명했다.
와인업체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레스토랑과 함께 '반값 와인의 밤'과 같은 행사도 벌였지만 여의치 않자 최근에는 결국 소매 가격 인하에도 나서고 있다. 실제로 올해 프랑스산 와인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5% 감소했다.
고급 와인으로 분류되는 '그랑 크뤼(Grand Crus)' 와인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캐이머스(Caymus) 와인 중 최고 등급인 스페셜 셀렉션의 경우 한병에 160 달러 이상하던 것이 최근에는 109 달러에 거래됐다고 포춘은 전했다.
더 신이 난 건 와인 매입업자들이다. 스크리밍이글(Screaming Eagle), 브라이언트패밀리(Bryant Family), 할란이스테이트(Harlan Estate)와 같은 와이너리의 희귀 카베르네는 2년 전만 해도 경매시장 밖에서 구입하는 게 불가능했다. 수년간의 예약 리스트가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대기자 명단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란이스테이트 소유주인 빌 할란은 "지난해까지 향후 5년간 예약 리스트에 빈자리가 없었지만 지난 가을을 기점으로 자리가 나기 시작했다"며 "대기자 명단에 들어오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할란은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된 회원에 한해 카베르네 한병을 500 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할란과 같은 나파밸리 와이너리들은 가격 인하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일부 업자들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도 할인 판매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포춘은 전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산 고급 와인 도미누스(Dominus)를 미국시장에 유통하고 있는 자비에 발리에는 "경기침체 속에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2006년 빈티지의 맛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가격을 낮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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