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전해주는 따뜻함 <호우시절>

2009-09-24 09:31

   
 
 
시놉시스(Synopsis): 건설 중장비회사 팀장 박동하. 중국 출장 첫날, 우연히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미국 유학 시절 친구 메이와 기적처럼 재회한다. 낯설음도 잠시, 둘은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간다. 키스도 했었고, 자전거를 가르쳐 줬다는 동하와 키스는 커녕 자전거도 탈 줄 모른다는 메이. 같은 시간에 대한 다른 기억을 떠 올리는 사이 둘은 점점 가까워지고 이별 직전, 동하는 귀국을 하루 늦춘다. 너무나 소중한 하루. 첫 데이트, 첫 키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첫사랑의 느낌. 이 사랑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시절을 알고 온 걸까? 이번엔 잡을 수 있을까?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로맨스. 내릴 때를 알고 오는 좋은 비처럼, 다시 그 사람이 온다면….

내달 8일 개봉하는 '호우시절'은 학창시절의 떨림을 현재형의 사랑으로 불러내는 연인들을 따라가되 그들의 꿈까지 함께 더듬는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그래도 사랑은 기억되는 것'이고 '그래서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따뜻한 믿음을 만들게 한다.

비라고 다 같은 비가 아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새싹을 돋게 하는 좋은 비인 것처럼, 학창시절엔 그저 친구인 채로 재회의 기약도 없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흘러 각자의 삶 속에서 어른이 된 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놓치고 싶지 않은 연인의 감정을 품는다.

이처럼 호우시절은 모든 사랑이 때로는 방해꾼으로 또는 조력자로 만나게 되는 타이밍에 관해 이야기 한다. 'There is no historical if'. 지나가 버린 시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금언이다. 하지만 사랑은 불가항력조차 가정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만든다.

만약 "그 때 말을 했다면?" 혹은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누구나 가져 보았을 법한 궁금증, "만약 그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그리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행복'까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속 연인들은 한 번도 맺어진 적이 없다. 그들이 겪은 다양한 이별의 형태와 그 과정의 감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깊은 공감을 자극했다.

허 감독은 영화는 누구든 할 말이 있어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사랑'을 다루되, 두고두고 떠오르는 깨달음과 아픔을 남겼다. 또 사랑의 기쁨과 슬픔, 상처, 회한까지. 사랑이 삶에 남기는 온갖 흔적을 남다른 통찰과 유려한 화면 속에 깊은 인상으로 남겨 왔다.

   
 
 
하지만 호우시절은 그의 필모그라피 중 처음으로 사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단지 서로를 사랑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한때 지녔으되 잊어버리고 있던 꿈을 다시 한 번 떠 올리게 되는 것이다.

정우성은 "전작들에 비해서 이 영화는 밝고 희망적이다. 그 전 작품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사랑이야기였다"며 "혹은 한 발 더 나아가 사랑에 대해 쓴 웃음을 짓는 뉘앙스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쓴 사랑에 대한 감정들, 약간 가슴 시린 그런 것들에 포커스가 주어졌다면 이 영화는 그래도 사랑은 내일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뉘앙스가 있다"라고 허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과 호우시절 속 사랑의 감정은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

또"사랑을 통해 삶이 위로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잃어버린 사랑에 연연하기 보다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 영화인 것 같다"며 "감독님이 결혼을 해서 그런가?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랑을 믿고 긍정하는 영화"라고 덧붙였다.

고원원 역시 "감독의 전 작품들을 보면 숙명적인 부분과 슬픈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며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한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서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참 따뜻하게, 밝게 그렸다"라고 말했다.

상처를 통한 깨달음이 아니라, 다시 사랑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두 사람. 긴 시간 뒤, 변화한 서로를 긍정하며 감싸 안는 사랑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또 그 사랑이 삶에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따뜻하게 돌아보게 한다.

유학 시절 친구였던 동하(정우성 분)와 메이(고원워 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둘 다에게 외국어인 영어로 대화한다. 가장 밀접한 관계인 사랑에 외국어는 엄청난 장애일 것 같다.

사랑이란, 같은 언어로도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하거나 상대에게 자기를 솔직하게 보여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호우시절은 모든 연인들이 가진 소통의 문제에 언어의 벽을 덧씌움으로써 역으로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연인이 아니듯, 좋아한다는 감정은 눈빛이나 사소한 배려의 몸짓을 통해서 더 솔직하게 전해질 수 있다. 상대방이 정말 좋고 늘 함께 있고 싶은, 혹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자기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직 사랑만이 사람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그 독특한 감정을 때로는 서툴게, 하지만 확실하게 전하는 호우시절의 연인들은 사랑이란 결국 언어 그 이전의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 사람이 다시 왔다'. '이번엔 사랑일까?'라는 설레는 질문에서 시작, 잊었던 기억이 사랑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는 호우시절. 사랑이 주는 따뜻함과 희망의 기운들로 관객들의 마음을 적셔 줄 예정이다.


아주경제= 인동민 기자 idm8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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