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만 요란했던' 기후변화 정상회의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각국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선진국의 책임을 강조하며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이었던 중국과 인도가 다소 유연해진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각국 정상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선언만 반복했다.
이번 회의가 오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 15)를 석달여 앞두고 열렸다는 점에서 향후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코펜하겐 총회는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기후변화협약을 마련하는 자리다.
◇선진국-개도국, 확연한 입장차 = 세계 각국 정상은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일제히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개발도상국 대표주자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기존의 소극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내비쳤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중요성과 긴급성을 전적으로 존중한다"며 "중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국내총생산 단위기준에 따라 크게 줄이겠다"고 밝혔다.
후 주석은 그러나 구체적인 감축 목표치는 제시하지 않은 채 선진국들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지금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개도국들의 강도 높은 배출 감축 조치"를 촉구했고 후 주석은 "낮은 수준의 기술과 자본의 부족은 개발도상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수단과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맞섰다.
이날 정상회의를 지켜본 한 유엔 외교관은 "개도국과 선진국이 서로 다른 잣대로 상황을 재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펜하겐 협상 전망도 불투명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마친 뒤 "이번 회의의 정치적 모멘텀으로 인해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야심 찬 코펜하겐 기후협상의 타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특히 오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줄이겠다는 하토야마 유키오 신임 일본 총리의 공언이 일부 국가에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코펜하겐 총회가 70여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미국은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보다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중장기적인 감축 목표 등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선진국들이 1990년 대비 25~40%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유럽과 일본 정도만 이에 동의했을 뿐 미국은 2005년대비 17% 감축안을 고수하고 있다.
유엔이 선진국 외에 모든 국가들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가량 줄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개도국들도 여전히 절대적인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조5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자금 지원 문제도 골칫거리다. 선진국들이 자금 지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엔은 일부 재원을 민간 영역으로 돌릴 계획이지만 실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탄소거래 시스템의 체계 마련 역시 과제로 남아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유럽연합(EU)조차 협정을 통한 완전한 합의보다는 정치적인 선언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로드 스턴 전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너무 빈약한 목표는 향후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코펜하겐 총회의 성공 여부를 떠나 기후변화에 관한 궁극적인 결론은 도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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