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권교체)아소 총리, 첫 정권 이양 '굴욕'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민주당 대표가 30일 총선 압승으로 5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끌어내면서 정치인생의 절정에 올랐지만, 자민당 총재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자민당 역사상 최악의 불명예 총리로 기록되게 됐다.
지난해 9월 3전4기의 끈질긴 도전 끝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직에 올랐지만, 불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총선 참패로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 준 최초의 자민당 총재 겸 총리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선거 참패의 원인이 아소 총리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가깝게는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가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다가 총재직을 사퇴한 이후 뒤이어 취임한 만큼 전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취임 이후 보였던 각종 행보는 아소 책임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취임 이후 공식 행사장에서 한자를 잘못 읽는가 하면, 빈부격차로 인해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자민당에 대한 감정이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호텔 바가 오히려 가격이 싸다"라는 등의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면서 민심이반을 부채질했다.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추진한 개혁의 핵심인 우정(郵政)민영화에 대해서도 취임 후 "사실 나는 반대했었다."라고 했다가, 고이즈미 전 총리와 측근들이 반발하자 "나중에는 찬성했다."라고 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총선 유세 과정에서도 실수를 이어가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그는 지난 6일엔 젊은 층과 만난 자리에서 "소득이 적을 경우 가족을 꾸려 생활해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돈이 없으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돌출 발언을 해서 야권으로부터 "책임을 강조하는 자민당 총재가 할 말이냐?"라는 등의 비판을 자초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노인들이 가진 유일한 재능은 일하는 능력"이라고 노인 비하성 발언을 했다가 해명해야 했다. 그는 총리 취임 이전부터 '실언 제조기'라고 불렸었다.
아소 총리는 그러나 이런 돌발 행동과는 달리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정치인이다. 일본 현대정치의 뿌리로 꼽히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이자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의 사위다.
부친은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에 1만여명의 조선인 징용자를 끌고가 강제노역시킨 규슈(九州)의 아소탄광을 경영했으며 자신도 32세에 아소시멘트의 사장을 지냈다. 총리 재직 중에는 삼갔지만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찬성론자이기도 하다.
일본의 귀족 학교로 통하는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과 런던대학원에서 유학생활도 했다.
9선(후쿠오카 8구) 의원인 그는 일본청년회의소 회장을 거쳐 1979년에 중의원에처음 당선됐다. 2001년 당 총재선거에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도전했다 패했다. 2006년 총재선거에 다시 출마, 아베 총리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07년 총재 선거에서는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계파간 담합 결과 후쿠다 총리에게 역시 패한 바 있다.
3전4기 끝에 총리직을 차지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그의 정치인생에 최악의 꼬리표를 다는 결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아주경제= 인터넷뉴스팀 기자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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