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붕의 생각나무) 서울대병원의 '오판(誤判)'

2009-10-14 10:11

“서울대병원에서 진찰 한번 받아보면 더 이상의 미련은 없겠다.”

암이나 희귀질환 같은 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가족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거주지의 인근 병원들은 물론이고 지인들의 추천으로 생전 듣지도 못했던 전국 방방곳곳 병원들을 찾아 다녀도 별 차도가 없는 환자가족을 둔 사람 입장에서는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대병원에서 한번 치료를 받아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환자가 완쾌되길 바라진 않더라도 최고의 의료진을 갖춘 서울대병원에서 한번이라도 진료를 받아보고 포기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에는 국내 최고의 의술을 가진 의사들이 많다.

위암 수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양한광 교수(외과)를 비롯해 간암 분야의 서경석 교수, 유방암 분야의 노동영 교수 등이 그 대표적인 교수들이다.

류마티스 내과라든지 뇌졸중 환자들을 치료하는 신경과는 환자들이 길게는 2∼3개월씩 대기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의사 중 상당수는 서울대의과대학 교수로서 급여를 정부로부터 받는 공무원 신분이다.

또 병원이 공공성을 띈 투자사업을 벌일 때는 정부가 소요자금을 지원해주거나 빌려주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처럼 재단법인이나 학교법인이 아닌 국가기관 성격을 띈 특수법인으로 분류된다.

지난 4개월동안 신종 인플루엔자인 A(H1N1)가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자가 3100명을 넘어섰다. 신종플루 때문에 사망한 환자도 2명이나 발생했다.

우리 정부는 신종플루에 대해 경계단계를 유지한 채 올 연말까지 500만명 분의 항바이러스제를 추가로 확보하는 등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031만명 분을 비축키로 했다.

이처럼 신종플루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방학을 마친 학교들은 개학을 늦추고, 임시 휴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휴교를 결정하거나, 개학을 연기한 학교가 전국적으로 모두 38곳에 달한다.

의사들의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도 24일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비해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범정부 차원의 국가재난대책본부를 출범시킬 것을 촉구했다.

일본 등 다수의 국가들은 신종플루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적극 대처하고 있다.

전국민이 신종 인플루엔자인 A(H1N1) 때문에 술렁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지난 6월말 정부의 신종플루 치료 거점병원 참여요청을 거부했다가 24일 거점병원에 참여키로 입장을 전격 변경했다.

거점병원은 신종인플루엔자 감염환자가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전국적으로 455곳이 지정됐다.

서울대병원은 거점병원 참여거부 이유로 신종플루 환자가 입원할 격리병동이 없고, 독립적인 환기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등의 시설미비를 그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국가기관 성격의 특수법인 의료기관으로서 국가적 재난사태나 마찬가지인 신종플루 환자를 회피하려한다는 국민들의 곱지않은 시선이 거세지자 돌연히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막대한 정부예산을 쓰는 등 특별대우를 받고있는 서울대병원이 국가적 위급상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국민들에게 또한번의 실망을 안겨준 꼴이 됐다.

그동안 국가 최고의 병원임을 자부해 온 서울대병원이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해주길 기대한다. 

아주경제= 박재붕 기자 pjb@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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