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실시는 신중히 결정하자

2009-07-26 16:41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풀어 놓은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과잉 유동성을 흡수해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칫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2.3% 성장했다. 수치만 놓고 본다면 우리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발표되는 지표도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버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다수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는 우리가 펼치고 있는 재정확대 정책과 저금리 기조에 대한 그 부작용을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도 통화완화 정책기조는 신용위기를 메우는 정도가 돼야지 경쟁력이 약해도 계속 살 수 있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도록 완화를 계속하면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온다며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기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제단체 강연에서 "경기회복의 가시화 정도에 맞춰 거시정책 기조의 정상화(출구전략)를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분기에 경제사정이 호전된 배경과 앞으로의 대내외 여건 등을 감안하면 경기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출구전략 시행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우선 지표호전이 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의 부양책에 힘입은 것이고, 몇 년 만의 기록이라고는 하나 전기 실적이 낮은 데 따른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분기와 비교하면 GDPㆍ민간소비ㆍ설비투자 모두 여전히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앞으로의 여건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예산 조기집행으로 하반기의 재정투입 여력은 상반기보다 크게 약화됐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모기지 부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재연 및 경기의 더블딥 우려 제기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 회복지연은 우리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틴 펄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이 더블팁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지적했고, 토론토 소재 글루스킨 셰프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더 나가 미국이 이르면 올 4분기에 또 다시 침체에 빠질지 모른다면서 최근 미국의 경기 회복세는 3분기까지 반짝 상승에 불과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출구전략 실시는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통화당국은 이미 출구전략을 위한 사전 포석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이후 시중에 공급한 27조원 중 17조원을 회수했고 외환스와프 거래를 통해 공급한 103억 달러 대부분도 거둬들였다

정부도 부동산 시장의 자금유입 상황 등을 지켜본 뒤 다음달 중 주택대출 관련 추가 규제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일부이나마 이미 출구전략이 시작된 것이다

출구전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론 모두 일리는 있다. 하지만 출구전략 실시 전에 우리 경제가 불황이라는 긴 터널을 진정으로 빠져 나왔는지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한다

침체 터널을 완전히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 등 민간 부문의 활력이 회복돼야 한다. 지금 정부가 경기낙관론을 펴면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일부 기업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얼마나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대기업 회장 등 경제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통령과 밥 몇 번 먹었다고 투자할 경제인은 아무도 없다. 이미 전 정권에서도 해 왔고 지금도 청와대와 경제부처가 나서고 있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투자시기는 경제여건에 따라 언제나 변경될 수 있으며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면 투자를 포기하거나 뒤로 미루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수와 중소기업 경기를 위축시켜 경기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더구나 아직 실물 경기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고 투자와 고용은 호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2분기 성장률도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 등을 제외하면 자생적 성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세계 경제 호전 가능성도 그리 밝지 않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세계 경제가 2010년 후반 혹은 2011년에 또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해서 출구전략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경기 위기를 예측 못하면 피해가  크듯이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못해 다가 올 인플레이션 등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다만 시행 시기만은 향후 경기상황 등을 종합 평가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주경제= 양규현 기자 to6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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