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UAW의 후회 "회사가 망하면 노조도 없다"

2009-06-29 09:21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 GM의 몰락은 가히 충격에 가까운 후폭풍을 안겨줬다. 지난 회에서 지적했듯, 기업 하나가 무너졌을 뿐인데 세계 경제까지 영향을 받아 위기를 불러왔다. 이 사실은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전후방 연관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복잡다단한지를 역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세기 기업의 아이콘 역할을 했던 GM의 몰락은 자동차산업 역사는 물론 세계 기업사의 ‘대 사건’으로 기록됐다. 전 세계 모든 경영자들에게 기업 경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80년간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이자 최고의 자금력과 인적 자원을 보유한 기업. 여기에 정부의 우호적인 정책지원까지 받아온 GM이 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GM을 비롯한 미국 빅3의 몰락은 그동안 중하위권에 머물던 자동차 업체들에게 글로벌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100여년만의 기회를 안겨줬다. 80년간 세계 차 시장을 호령했던 GM이 무너지자 도처에서 GM의 빈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이 같은 시기에 기회를 잡아 세계 시장 확대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호기가 노조의 발목잡기로 자칫 GM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데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최대 조직인 GM노조가 그동안 파업을 무기로 회사의 발목을 잡아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GM노조는 기업의 경쟁력을 외면한 채 파업을 무기로 실리만 추구해 왔다. 노조가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협조해야 고용안정이 가능함에도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뉴 GM에서 노조가 대주주로 변신, 이제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동안 노조의 실리만 추구하며 단기적 보상 위주의 거래적 노사관계를 펴 왔지만 이제는 이런 자세를 버리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전처럼 과다한 복지혜택은 일시적으로 노사관계 안정 효과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기업체질을 약화시키게 된다.

GM은 그동안 경영성과가 악화일로인데도 파업을 빌미로 한 노조의 힘에 밀려 복지혜택을 늘려왔다. 이것이 몰락의 단초가 됐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러나 GM노조는 그동안 힘으로 획득한 대부분의 임금과 복지제도를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고 대주주로서 회사의 경쟁력도 책임져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시작됐다.

◇파업 빌미로 노조 회사 압박시 GM 전철 밟을 수도

결국 노사간 신뢰관계 형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GM은 1998년 노사합의를 통해 위기극복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노사협력은 한 두 차례 성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기업이 상시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라는 점이다.

노사가 기업의 지속 성장과 고용안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해 현장 경쟁력 제고 활동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GM식 노사 모델은 한국의 자동차업계와 매우 유사하다. 이는 곧 한국 자동차 노사관계도 변화하지 않으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질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파업을 무기로 회사를 압박해 최대한 실리를 취해온 GM노조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기업이 살아 있을 때만 유효한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 노사관계도 노조가 교섭력을 바탕으로 매년 회사를 압박해 성과를 획득해 왔다는 점에서 GM의 전철을 밟고 있는 양상이다.

현대차와 거의 동일 수준의 임금과 복지, 단체협약을 해온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거쳐 대규모 정리해고에 나선 것을 보면 GM사태를 보는 듯하다.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악의 자동차시장 침체 상황에서 노조가 경쟁력을 외면한 채 과도한 경영개입과 임금인상 등 단기적 이익만 좇는 GM식 관행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국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현대·기아차 역시 이 같은 관행이 지속될 경우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이 ‘강 건너 불’이 아닌 ‘발등의 불’이 될 수도 있다.

경기에 민감한 자동차산업의 특성 상 고용불안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독일이나 일본의 자동차 노조들이 고용 안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과 협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 노조도 진지하게 연구하고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차에 유리한 상황, 노조 발목 잡을시 ‘공멸’

일단 현 상황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재편 상황에서 향후 거물이 어느 기업이 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GM의 아성을 무너뜨릴 정도로 실력과 힘을 키운 도요타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반면 최근에는 도요타를 무색케 할 뉴 페이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유력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는 최근 ‘고릴라를 주목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자동차 시장에 새롭게 나타난 고릴라(거물)는 도요타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차였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업체인 ‘JD파워’가 조사해 발표한 올해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전체 브랜드 중 4위에 오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도 지난 25일 ‘현대차의 해(Year of The Hyundai)’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대차가 품질 최고 기업인 도요타와 혼다를 패배시켰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 뉴욕타임스는 현대차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는 반대로 노조의 협력이 시급해 지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GM의 파산은 성공에 안주해 위기의식이 결여되거나 시장변화에 소홀히 대처할 경우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설로 남은 GM 노조와 닮은꼴인 한국자동차 노조가 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경쟁력 제고에 협력해 고용·복지 유지하는 일본과 독일의 노조를 배워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물론 경영 악화에도 불구, 노조 힘에 밀려 각종 혜택 확대한 경영진도 각성해야 하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노조의 전격적인 인식 전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일방적 요구와 비타협적 자세는 결국 자멸의 길을 앞당기게 된다. 미국의 경우 차 산업 위기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회사가 망하면 고용보장은 없다’는 진리를 증명해 준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국 차의 미래도, 노조의 미래도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정희식 연구위원은 “GM은 30여 년 동안 진행된 기나긴 쇠퇴과정에서도 위기의식을 갖지 못하고 시장 패러다임과 산업 규범의 변화에 근본적인 대응을 하는 데 실패했다”며 “노조(UAW)는 파업을 무기로 회사를 압박해 GM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GM의 예에서 보듯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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