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도입한 하야미 전 BOJ 총재 타계

2009-05-17 17:47
'도덕성의 화신' VS '최악의 중앙은행장'

   
 
하야미 마사루 전 일본은행 총재
세계 최초로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했던 하야미 마사루(速水優) 전 일본은행(BOJ) 총재가 16일 오전 향년 84세로 타계했다.

하야미 전 총재는 일본 경제가 부실채권으로 인한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던 1998년 3월 취임해 2003년 3월까지 총재를 역임했다.

그는 일본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쟁취한 소신있는 총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로 밀어넣은 장본인이라는 악명도 함께 얻었다.

하야미 전 총재가 취임할 당시 BOJ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BOJ 고위 관계자들이 내부 정보를 금융기관에 넘겨주고 돈과 향응을 받은 이른바 '무라카미 스캔들'이 터지면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 사건 때문에 후쿠이 당시 BOJ 부총재를 비롯해 여러 명의 간부들이 사임했다.

이런 와중에 하야미 전 총재는 도덕성을 무기로 대장성(현 재무성)에 맞서 조직을 보호했으며 BOJ의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신(新) 중앙은행법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반면 아시아 외환위기로 빈사 직전까지 몰렸던 일본 경제를 회생시키는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하야미 전 총재는 취임 직후 통화 완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정책금리를 0%로 낮추며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는 통화 완화 정책을 통한 경기 진작은 한계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0년 8월 기습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2001년 3월에는 통화의 양을 조절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내놨다.

당시 글로벌 경제는 IT버블이 붕괴되면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었다. 하야미 전 총재는 제로금리 정책을 서둘러 종결하는 바람에 어렵사리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던 일본 경제를 다시 길고 긴 리세션(경기침체)으로 내몰았다.

그에게 '최악의 중앙은행장'이라는 오명이 씌어진 이유다. 결국 하야미 전 총재는 반년 만에 금리를 다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전 세계 중앙은행장들에게 경기침체 국면에서 섣부르게 금리를 인상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명확하게 각인시켰다.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데는 하야미 전 총재의 실패를 통해 습득한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다.

하야미 전 총재는 일본 고베 출신으로 도쿄 상과대(현 히토쓰바시대)를 졸업하고 1947년 BOJ에 입행했다. 1981년에는 닛쇼이와이(현 소지쓰) 종합상사로 옮겨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미망인은 전 무역청 장관 등을 지낸 닛쇼이와이 설립자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