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관치금융' 유혹 앞에 솔직하라

2009-03-29 17:19

   
 
윤경용 부국장 겸 금융부장
1990년대 중반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관료들 사이에 '신도시'는 금기어였다. 1990년대초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 사업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5개 신도시에 대해서는 자족기능이 없는 베드타운이란 여론의 비판이 비등했다.

당시 5개 신도시 사업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주택 200만호 건설 목표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렇다보니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세계 도시 건설사에 유례없는 5개 신도시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됐다.

5개 신도시 건설 사업이 동시에 이뤄지다보니 자재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하는 역기능이 불가피했다. 모래부족으로 바닷모래를 세척없이 사용하는 바람에 부실시공으로 '00신도시는 몇년못가서 아파트가 붕괴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무성했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건교부 관리들 사이에서 신도시는 업보같은 존재였다. 당시 한 고위 간부는 "주택공급책으론 신도시 밖에 없는데.."라고 끙끙댓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5대 신도시 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하게 사전검토를 거쳐 계획 신도시를 만들면 되는거 아니냐. 현실적으로 도심에 집을 지을 땅이없는 상황에서 공급책으론 유일한거 아니냐" 이른바 '제대로된 신도시 건설론'이다.

몇년 지나지 않아서 끙끙대고 쉬쉬거렸던 금기어는 '미니 신도시'로 고개를 들더니 결국엔 줄줄이 '신도시'가 발표됐다. 그리고 한때의 금기어는 현재 판교 동탄 김포한강 신도시에서 송파 동동탄 등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40조원에 달하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 운용과 관리방식에 대해 말들이 많다. 운용 주체부터 관리.감독은 어떻게 할 것이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찮다.

지난주 이와 관련 한 토론회에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시종일관 정부가 투명한 공적자금 운용을 위해 보완책을 내놓아야 하며 효율성을 높이는대로 다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적자금 운용에 대한 관리 감독 기구는 설치될 예정이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29일 "구조조정 자금에 대한 감독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과거에 있었던 유사 기구를 참고해 별도 기구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16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운용을 총괄기획하고 회수업무까지 담당했던 전례가 참고될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 침체가 바닥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은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무려 40조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을 만들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사들일 방침이다. 이 기금은 전액 정부보증채권을 발행해 마련되는 사실상 공적자금이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병풍 뒤에 숨어서 관치금융 논란의 굴레를 벗을 생각만 하고 있다. 내용상으론 사실상 관치금융으로 회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관치금융'이 새로 떠오른 이 시대 금기어이지 싶다.

앞서 언급했듯 90년대 중반 건교부 관리들이 '신도시' 금기어를 안고 전전긍긍했던 시절이 떠오르는 이유다. 음습했던 '관치금융'의 추억에 얽매여 정작 정부가 나서야 할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90년대 중반의 '신도시'나 현재의 '관치금융'이나 정부 스스로가 만든 금기어일 뿐이다. 

이미 10년전 외환위기를 극복한 우리 사례는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자 금융선진국인 미국 에서도 관치금융으로 답습하고 있다.

정부는 '관치금융'의 유혹 앞에 당당하고 솔직해야 한다. 책임있고 용기있는 관치금융은 결코 음습하지 않다.

윤경용 기자 consrab@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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