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은 ‘고통분담’, 등기임원은 ‘연봉인상’...이상한 경영 셈법

2009-03-15 14:45

-일부 대기업, 등기임원 보수 상향 조정
-고통분담 명분으로 임직원 급여는 삭감
-신규일자리 창출도 지난해 대비 축소

 
“다른 부분은 다 줄여도 등기임원 연봉만은......”
 
‘잡셰어링’을 위한 고통분담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오히려 등기임원의 보수한도 총액을 높게 설정하는 이율배반(二律背反) 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13일 주주총회를 통해 지난해 350억원이었던 등기임원 보수한도를 550억원으로 크게 높였다.
 
지난해 삼성전자 사내이사의 평균연봉이 56억원 상당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등기임원의 퇴직금이 포함돼 일시적으로 보수한도가 높게 책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퇴직금 액수나 등기임원의 평균연봉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 이번에 인상된 보수한도가 어떻게 쓰여질지 삼성전자 일반 주주와 국민들은 알 수 없게 됐다.
 
효성도 보수한도를 50억에서 70억으로 상향 조정했다.
 
효성 측은 “보수한도가 10년 동안 동결돼 이를 늘린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효성의 기존 보수한도는 실적 대비 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이다.
 
특히 효성은 다른 기업들이 비용절감과 구성원의 연봉 삭감 및 동결로 잡셰어링 방안을 만들고,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여전히 잡셰어링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경련 수장사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그룹인 효성이 오히려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효성은 올해 대졸 신입사원을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660명을 채용키로 최근 결정했다.

LG전자 역시 13일 주총에서 보수한도를 35억원에서 45억원으로 높였다.
 
LG전자 관계자는 “2년 전 크게 줄였던 지급한도액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온 국민이 시름하고 있는 시기에 굳이 보수한도를 상향조정한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다.
 
올해 등기임원 보수한도를 높인 기업 가운데 대부분은 경제위기로 인한 고통분담을 강조하며 임직원과 신입사원의 연봉을 삭감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올해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크게 줄었다.
 
또한 3~6개월 상당의 임시직인 인턴 선발로 잡셰어링에 동참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들 인턴사원들은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며, 추후 신입공채 지원 역시 여의치 않다.
 
뿐만 아니라 주주들에 대한 배당 역시 축소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500원에서 5000원으로 배당금액을 33%줄였다. LG전자는 850원에서 59% 축소된 350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주주들이 등기이사의 업무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체계도 없이 기업 내부에서 임의로 이들의 급여를 책정하고 있다”며 “등기이사 연봉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급여 결정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 대다수 기업들은 등기임원에 대한 보수한도를 축소하거나, 등기임원 수가 늘었음에도 동결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통신과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KT와 신한금융지주는 이번 주총을 통해 보수한도를 5억원 축소했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134억원에 달했던 보수한도를 85억원으로 크게 줄였다.
 
또한 현대자동차, SK텔레콤, 포스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도 지난해 보수한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보수한도 40억원 가운데 28억원 만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임원의 보수한도는 회사와 주주들이 결정하는 만큼 이에 대해 제 3자가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경제위기를 이유로 직원들의 급여는 물론 복리후생 등을 축소하며 희생을 강조하면서 일부 기업이 조직의 최상위 계층인 등기임원의 보수한도를 높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이하늘 기자 ehn@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