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지표…美 증시 회복 10년은 지나야
미국 증시가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다우지수는 지난 2007년 10월 고점에서 반토막났고 같은 기간 10조 달러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월가에서는 증시의 '바닥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지수의 향방을 가늠해주던 주요 지표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우지수가 12년래 최저치인 7000선 밑으로 가라앉자 시장의 관심은 일제히 바닥으로 쏠렸지만 바닥시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16일자 최신호에서 이처럼 미 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증시가 불황에 빠진 것은 냉탕과 온탕을 주기적으로 넘나드는 경기변동에 따른 것이었지만 최근 증시는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면서 휘청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방향성 잃은 지표 = 때문에 증시의 움직임을 예고하던 주요 지표는 쓸모가 없게 됐다. 과거 증시에서는 주가수익비율(PER)이 평균 15배일 때 거래가 활발했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 수록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연초 뉴욕증시의 PER은 11배. 저평가된 만큼 매수세가 유입될 시점이었다. 하지만 S&P500지수는 1~2월 19%나 빠졌다.
'주가'보다 '수익'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톰슨로이터 조사로는 지난 1~2월 뉴욕증시에서 수익률은 18%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제자리를 지킨 주가가 추가 하락을 주도한 셈이다.
통화정책도 무용지물이었다. 경기가 침체됐을 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를 낮춰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고 이 자금은 증시로 흘러들어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8월 이래 FRB가 10차례 금리를 낮추는 동안에도 뉴욕증시는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금융시장이 얼어붙자 금융권과 투자자들이 한결같이 대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지난 1984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한 총통화(M2)도 증시에 활력을 주지 못했다. M2는 현금과 은행의 저축성예금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M2의 증가는 보통 증시의 활황을 점치는 지표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증시 자금을 거둬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달 미국 고용시장이 25년래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자 미국인들이 현금을 보유하려 할 뿐 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다우지수 추이(출처:야후파이낸스) |
◇미 증시 회복, "10년 지나야" = 최근 미 증시의 불황이 전혀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카르멘 레인하르트 미 메릴랜드대 교수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1977년 스페인과 1991년 스웨덴, 1997년 태국의 사례가 금융시스템 붕괴라는 측면에서 현재 미 증시가 처한 상황과 견줄 만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이들 증시의 주요 지수는 평균 56% 하락했는데 S&P500지수 역시 지난 3일까지 전 고점 대비 53% 빠졌다. 이들 증시가 바닥을 친 시기는 평균 3.4년. 하지만 레인하르트 교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미국 증시가 전 고점을 회복하려면 6년 이상은 지나야 한다"며 "일본 닛케이지수는 지난 1989년 3만8900선을 찍은 이후 여전히 7200선을 맴돌고 있다"고 말했다.
제러미 시겔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미 증시가 한창 때로 돌아가는 데엔 최소 10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 증시 수익률이 국채 수익률을 밑돌았는데 역사적으로 이 같은 경우는 단 한차례 30년간 지속됐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미 국채 가격이 상승세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10~15년 이후에는 증시의 수익률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증시의 불황이 금융시스템 붕괴에서 비롯된 만큼 금융시스템이 복원돼야 증시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권의 생존능력을 입증할 수 있도록 은행들이 순자산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프 메이슨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는 금융시스템이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평균 6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미 정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부실 은행들을 통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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