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당의 미숙한 국회 운영
2009-03-01 17:38
2월 임시국회가 계속되는 파행 속에 1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거론하며 여야를 압박하고 나섰다.
김 의장은 이날 여야 대화를 촉구하며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2일 본회의에서 쟁점 법안을 직권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김 의장은 "여당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 야당에 의해 막히기 때문에 이것을 직권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민생·경제법안뿐 아니라 여야간 최대 쟁점인 미디어관련법의 직권상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김 의장이 이날 직권상정을 직접 거론함에 따라 여야가 극적 타결을 보지 않는 한 본회의장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국회 폭력 추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직권상정 제도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입법권을 빼앗은 제도이다. 직권상정은 상임위에서 충분한 토론 등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을 국회 의장 직권으로 생략하고 본회의에 바로 상정, 처리하는 것으로 사실상 입법의 핵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반민주적인 특성 때문에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직권상정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 80여건에 이어 이번에 수십 건의 법안을 직권상정 목록에 올리는 등 직권상정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휘두르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여야가 함께 불러온 결과 일 수 있다. 국회가 파행된 원인을 보면 여야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야당의 반대로 인한 파행보다는 여당의 국회 운영 미숙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2월 국회에서는 잠자고 있는 2400개 의안 가운데 경제 민생 관련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쟁점법안 가운데서도 출자총액 제한 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정무위 계류 법안 등은 화급을 다투는 안건이다.
이 법안 때문에 많은 경제 관련법까지 논의조차 못했거나 논의 중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미디어 법 등 비경제 법안 또는 시간적 시급을 요하지 않는 법안은 일단 뒤에 처리하는 방향으로 국회를 운영했다면 오늘날 막판 부실 법안 직권상정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 관련법안 내용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대기업과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2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방송업계의 밥그릇 싸움이기도 한 법안이다. 그런 법안 때문에 경제위기에서 민생을 보듬고 경제를 살리자는 중요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이 법안이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 법안보다 중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미디어 관련 법안의 쟁점조항에 대해 국민 여론을 묻는 등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 뒤 한나라당과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 의장도 이 법안을 강행 처리해 몰고 올 국론 분열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처리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야당도 민생법안에 대한 김 의장의 소신 처리를 막아서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되며 한나라당은 무조건 김 의장에게 밀어 붙이기를 주문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국회 운영 미숙으로 인해 국회 파행을 가져 왔다면 밀어붙이기로 더 큰 정국 파행을 불러 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장도 좀 더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한편 처리 법안의 경중을 고려해서 원만한 법안 처리를 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경제 위기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이 커져 가고 있는 이때 시급을 요하지 않는 법안 강행처리로 불안해진 사회 심리를 더 배가시키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정경부장 양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