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국유화 논란 확산

2009-02-24 15:48
씨티, AIG 이어 BoA도 국유화 대상 거론

미국 정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 은행의 국유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미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씨티그룹이 미 정부에 보유 지분 확대를 요청한 데 이어 보험사인 AIG도 미 정부와 추가 자금 지원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주가가 연일 추락하고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조만간 국유화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씨티·AIG 이어 BoA 국유화 거론 = 23일(현지시간) 미국 CNBC방송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가 미국 기업사상 최대 규모의 분기 손실을 예고하며 미 정부와 추가 자금지원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AIG는 이미 15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지만 지난 4분기 손실이 미 기업사상 최대인 6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6개월 AIG 주가 추이 (출처: 야후파이낸스)

방송은 AIG가 기존 여신에 대한 담보를 추가로 내놔야 하는 상황에 몰린 만큼 미 정부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AIG가 미 정부 보유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부는 AIG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대가로 79.9%의 지분을 우선주 형태로 넘겨 받았다.

앞서 씨티그룹도 미 정부에 정부 소유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정부 지분을 25~40%로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지난해 씨티그룹에 자금 지원하면서 취득한 520억 달러 어치의 우선주(지분율 7.8%) 가운데 450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6개월 씨티그룹 주가 추이 (출처: 야후파이낸스)

미국 최대 은행인 BoA도 국유화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마켓워치는 이날 "국유화는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결정한다"며 BoA의 국유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가 폭락으로 실추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국유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증시에서 BoJ 주가는 지난 4개월간 85%나 주저앉았다.

   
 
최근 6개월 BoA 주가 추이 (출처: 야후파이낸스)

◇특혜시비·실효성 논란도 = 상당한 액수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대형 금융사들이 국유화 논란의 중심에 서자 월가의 경쟁사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씨티그룹과 미 정부간의 지분율 확대 협상이 알려지자 월가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 정부가 지분을 늘려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되면 씨티그룹은 정부의 보호 아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는 만큼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월가의 경쟁사들은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월가 금융권의 한 고위 임원은 "씨티그룹이 미국 정부를 등에 엎게 되면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며 "씨티보다 자산 건전성이 월등한 금융사도 정부를 배후에 둔 씨티그룹을 못 당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유화 이전에 강력한 규제가 뒤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정부가 씨티그룹과 벌이는 지분 확대 논의가 지난 10년 동안 유지된 무차별적인 금융규제완화 추세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순히 부실은행의 지분을 떠맡기 전에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 정부는 지난 1999년 글래스-스티걸법을 철폐함으로써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영역 장벽을 허물었다. 이로써 상업은행이었던 씨티그룹과 증권 및 보험그룹이었던 트레버러스가 합병해 지금의 씨티그룹이 탄생하게 됐다. 결국 씨티그룹의 부실은 규제 완화의 세례 속에 리스크가 큰 투자부문에 거침없이 뛰어 든 결과라는 것이다.

월가 금융권의 한 인사는 "글래스-스티걸법과 같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라며 "규제 철폐가 최근의 위기를 유발했다"고 말했다.

한편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정부 규제 하의 민간 은행 시스템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며 은행 국유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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