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워낭소리, 공전의 이유
워낭소리, 공전의 이유
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화제다. ‘워낭’이란 소나 말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말한다. 영화에는 어느 산골마을에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마흔 살이 넘은 소가 출연한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워낭을 ‘요롱’(‘요령’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불렀다. 야산에 소를 풀어놓은 뒤 해가 저물 무렵 소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요롱소리였다.
가끔 소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이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밤중에 워낭소리가 들리면 “소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라며 외양간으로 간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튼 요즘 울려 퍼지는 워낭소리는 어렵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꼴찌들이나 마이너들, 그리고 음지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서민들에게도 희망이 되고 있다.
영화 ‘워낭소리’가 독립영화 사상 최다 관객, 최다 상영관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고 개봉 한달 만인 15일까지 60만7372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알다시피 ‘워낭소리’는 총제작비가 1억원밖에 안 되는 독립영화다. 기획 5년, 촬영 3년을 포함, 10년이 걸린 제작기간이 말해주듯 인고의 시간에 피와 땀과 눈물이 더해진 영화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자 감동이다. 거품이 잔뜩 낀, 제작비 40억원을 예사로 아는 상업영화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정신과 장점이다.
이런 가운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 정책이 줄어들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독립영화계 측은 최근 서울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독립영화의 현실을 걱정하는 감독모임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비판했다.
이들의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또 다른 ‘워낭소리’가 출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예술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독립영화에 대한, 미약했던 지원 프로그램마저 올해부터 대폭 사라지거나 축소됐기 때문이다.
사실 ‘워낭소리’가 스크린 일곱 곳에서 개봉될 수 있었던 것도 독립영화 개봉지원 제도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지난해 말로 사라졌다.
개봉 지원 외에 제작 지원 프로그램도 대폭 축소되거나 독립영화에 혜택이 돌아가기 힘들게 바뀌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돼 버린 것이다.
제작과 배급 양쪽에서 지원 제도가 사라지면 독립영화가 설 곳은 아무데도 없다. 어렵게 제작해도 일반극장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들의 관심은 제작비가 얼마인지, 메이저 영화사의 것인지 일 뿐 작품의 예술성이나 영화적 다양성은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는 참신한 인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상상과 영화적 다양성을 제공하는 마지막 한국영화의 보루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 영화는 저급한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감독 연출자들이 계속 나오고, 새로운 영화 탄생의 모태로서 독립영화가 그동안 기성영화를 자극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무조건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의 돌파구 역시 독립영화를 소중히 키우고, 상업영화로 연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문화강국'의 핵심인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라도 새로움과 실험성이 살아있는 단편ㆍ독립영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
독립영화를 독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지원을 줄이고 있는 현실은 마이너나 음지에서 자라고 있는 창의력과 가능성의 싹을 밟아 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독립영화를 외롭게 놔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산업부 이상준 bm2112@ajnews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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