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권의 싱글 톨아메리카노] "달 속에 내 가족이 있다"
2009-02-10 07:04
지난해 언론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 한분이 과로로 숨을 거뒀다. 가족과 떨어져 업무에 시달리다 지병이 악화 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얼마전에는 지경부의 안철식 전 차관이 승진 9일만에 역시 과로사했다. 13개월여 동안 휴일없이 일만 한 것은 물론이고 설 연휴에도 고향인 청주를 다녀오려다 그마저도 일을 위해 취소했다고 한다.
공무원의 과로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3년 이후 지난해 3월까지 과로사한 공무원만 414명. 2007년에 공무중 사망한 공무원 107명 가운데 41명인 38%가 과로사일 정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공무상 과로사로 판정해 유족보상금을 지급한 인원만 모두 301명에 달한다.
하기사 어찌 공무원들 뿐이겠는가. 경제에 대한 위기감속에 곳곳에서 어렵다며 비명소리가 들리는 요즘이다. 샐러리맨들 역시 야근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고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려면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작은 지적에조차 눈길을 주게 되는게 요즘이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제자리에 머물 수 있을 것만 같고 세상의 거센 물결에 맞서려다보니 정작 가족과의 시간은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아침은 커녕 저녁조차 함께 하기 힘들지만 정작,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위안이 되는게 바로 '가족'이 아닐까.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프랑크 쉬르마허의 책을 보면, 가족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846년 미국, 서부로 향하던 사람들이 눈사태로 인해 돈너 계곡에 발이 묶였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부터 여덟살 여자아이와 60대 노인까지 80명 남짓한 사람들은 계곡에 갇힌 채 6개월의 사투를 벌여야했다. 이듬해 3월 첫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딸린 식구없는 건장한 남성보다 노약자가 많은 대가족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
육체적으로 강인하고 부양가족이 없던 15명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겨우 3명에 불과했으나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65세의 노인은 손에 심한 상처를 입고도 부인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살아남았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계곡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가족’.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은 신체적인 조건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있었느냐, 혼자였느냐였다고 하니 “존재 자체 만으로도 가족은 개인에게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는게 프랑크 쉬르마허의 분석이다.
정월 대보름이다. 오곡밥과 갖은 나물을 해먹고 귀밝이술에 호두 땅콩같은 부럼 깨기며 ‘내 더위 사가라‘는 더위팔기까지 있는 날. 그러고보면 옛분들은 쉼표가 있어야 마침표도 찍을 수 있다는 노동과 휴식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마음까지 위축되서 종종걸음을 치게 되는 요즘. 그럴수록 잠시 달을 보며 숨을 고를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해도 달을 보며 나를 생각해줄 가족이 있다면, 또 그렇게 세상은 견뎌내지는게 아닐까.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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