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창조 기업과 ‘입 다무는 구성원’

2009-01-02 15:01
[박재붕의 비즈니스파일]


‘○일 12:00 회사 앞 ○○식당, 사장님과 점심식사.’

이는 자동차부품 전문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직원의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실제 스케줄이다.

스케줄로만 봐서는 중역급으로 생각되지만, 이 직원은 다름 아닌 이 회사의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허모(31) 대리.

사장님하고 무슨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 건가하고 오해하기 쉽지만, 다른 부서인 글로벌전략팀 이모(33) 대리의 다이어리에도 똑같은 스케줄이 적혀있다.

소위 지식창조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한 대기업의 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직 내 침묵현상(Organizaiton Silence)’이란 말이 있다. 리더 혼자 이야기하고 구성원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조직 내에서 침묵이 일상화되면, 즉 단지 잠시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다.침묵의 폐해가 상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조직 내 침묵현상이 일어나면 집합적 창의성이 발휘되기 힘들다. 리더의 계획이나 의도가 부하에게 명확히 전달되기도 어렵다. 구성원들의 냉소주의(Cynicism)도 확대 재생산된다.

구성원들이 침묵하는 것은 할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말을 못하거나 안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옳다.
그럼, 왜 구성원들은 입을 다무는 것일까?

소모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부정적 피드팩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발생해 결국은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말을 해 봤자 반영도 안되고 바뀌지도 않는다면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입을 다물게 된다.

조직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분위기를 요구하지만,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가치관들은 구성원들이 입을 다물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이런 현상은 상사 스스로가 ‘내가 부하 직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자기 과신’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부하들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그건 아니야.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나 해”라는 말이 불쑥 튀어 나온다.

이런 리더의 경우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 없이는 구성원들에게 진실된 감동을 주기도 어렵다. 
구성원들의 침묵이 지속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침묵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영 분야의 대가인 일본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지식 창조기업(Knowledge Creating Company)’이란 저서에서 “앞으로는 각 개별 구성원들이 갖고 잇는 지식을 융합시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창출해 내는 조직체계를 만드는 기업만이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통이 그 어느때보다 강조되는 상황에서 지식창조 기업의 길을 갈 것인지, 구성원들이 입을 다무는 조직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리더들은 깊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pj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