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행·보험에 다 속았다"…엔화대출자 분노 폭발
한은 상대로 행정소송·총재 퇴진 추진
은행·보험, 불완전판매 책임도 묻기로
원·엔 환율 급등과 대출 상환 독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엔화 대출자들이 한국은행과 시중은행, 보험사를 상대로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한국은행을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과 이성태 한은 총재의 퇴진 운동을 추진하는 한편 은행과 보험사에는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을 묻기로 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엔화 대출로 피해를 본 대출자 390여 명은 온라인을 통해 모임을 조직하고 한은에 소송을 걸기로 했다.
이 모임 공동대표인 정 모씨는 "회비로 소송비용을 마련 중이며 소송장도 이미 작성했다"며 "오는 31일까지 회비를 입금하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12월 초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당초 대출 만기가 최장 10년까지 가능하다는 조건으로 은행과 엔화 대출 계약을 맺었으나 한은이 대출 만기 연장을 규제하는 바람에 큰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은은 은행권의 엔화 대출 급증으로 국내 유입되는 엔화가 급증하자 지난 2006년 8월 엔화 대출 자제를 요구하는 창구지도를 실시했다. 이어 이듬해인 2007년 8월부터 엔화 대출 만기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올 들어 원·엔 환율이 급등하면서 발생했다. 지난해 말 800원대 수준이던 원·엔 환율은 올 들어 1000원대를 돌파한 후 최근에는 16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일년 동안 2배 가까이 뛴 셈이다.
환율 급등으로 상환해야 할 원금과 이자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만기를 연장할 수 없게 되자 대출자들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모임의 또 다른 공동대표인 최 모씨는 "대출 당시 한화로 20억원 가량이던 원금이 현재 40억원이 됐다"며 "만기 연장 규제를 이미 대출받은 사람들에게 소급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은 측은 올 3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만기 연장을 실시했으며 외채 유입 규모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만기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원준 한은 국제기획팀 과장은 "엔화 대출로 피해를 본 대출자들이 많아 만기를 2년 정도 연장했다"며 "그러나 2년 내에 환율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10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엔화 대출자 대부분은 저금리로 엔화를 들여 와 사업자금으로 썼는데 이 때문에 불필요한 엔화가 너무 많이 유입됐다"며 "대출 만기와 용도 제한은 정책적 목적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소송이 제기된다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반박했다.
엔화 대출자 모임은 은행에 대해서도 책임 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금리가 낮을 때는 은행들이 대출 확대를 위해 엔화 대출을 크게 늘려 놓고 환율이 오르자 만기 상환 때마다 추가금리와 추가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정 공동대표는 "은행이 이자를 올려 최근 만기를 연장한 대출자는 8~10대 금리를 내고 있다"며 "환율 상승을 빌미로 추가담보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일반 사업자들에게 남은 담보가 있을 턱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험사의 경우 엔화 대출을 알선해주며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공동대표는 "보험설계사들이 특정 은행의 저금리 엔화 대출을 소개하면서 자사 보험상품 가입을 요구했다"며 "은행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김유경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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