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갈팡질팡..진짜 禍 키운다

2008-11-23 12:45


    글로벌 경기의 침체로 국내 건설.조선.해운.철강 등 취약 업계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주도해야 할 정부와 은행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정부와 은행이 구조조정에 대한 뚜렷한 원칙과 기준도 없이 시시각각 진로를 바꾸거나 방관하면서 혼선만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혼란과 무기력한 모습이 11년전 환란당시 기아자동차 처리를 놓고 우왕좌왕하다가 경제.사회적 비용만 키우며 위기를 자초했던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3일 금융계와 정부에 따르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던 금융시장은 다시 불안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으며 경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은행권은 생존가능 기업은 지원을 통해 신속히 살리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업체는 퇴출시킨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아래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에 해당되는 건설업종의 구조조정에 직접 나서지 않고 은행측에 맡겨놓은채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은행들은 건설사 대주단(채권단) 협약 가입의 마감시한을 연장한 끝에 아예 기한이 없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가입대상 신용등급도 BBB+이상에서 그 이하로 수정하는 등 갈팡질팡 하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원칙과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고 은행들은 거래 기업의 재무.영업상태, 신용도, 향후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옥석'을 가려야 하는데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조선업종과 다른 업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의 필요성만 언급하고 있을 뿐,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논란이 없지않지만 외환위기 때 한국의 구조조정은 세계적 모범사례로 꼽힌다. 환란당시 정부는 구조조정 1단계로 11개 은행, 6개 증권사, 13개 보험사, 458개 기타 금융기관을 합병, 자산부채 이전, 청산 등의 방식으로 과감하게 정리했다.

   각 은행은 1998년 5월부터 '기업부실판정위원회'를 설치해 기업들을 정상, 회생가능, 회생불가 등 3단계로 구분, 64대 그룹 소속 부실 징후기업 총 313개를 대상으로 판정을 실시해 대상기업의 17.6%인 55개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판정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현재의 구조조정은 온정주의, 정치적 고려 등에 의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감독당국이 구조조정의 원칙과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은행이 문제되는 기업을 차례차례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은 커녕 갈수록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의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의 모든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자구노력보다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손 벌리는데 여념이 업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권과 기업에 133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키로 했고 앞으로 이 액수는 계속 불어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연구위원은 "은행들은 자체적인 노력없이 정부로부터 외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받는 등 금융기관과 기업에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부가 흘러들어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건설업 뿐아니라 자동차, 유통 등 거의 모든 업계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지원을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는 도미노식으로 사안별 구조조정 방안을 내세워서는 안되고 차제에 국내 산업 구조 조정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산업구조 경쟁력 강화단'(가칭)을 만들고 대규모 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하여 국내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