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 어디까지?
'R의 공포'가 글로벌 경제를 옥죄고 있다. 미국발 신용위기 파장이 금융권은 물론 부동산, 유통 등 산업 전반으로 퍼지면서 위기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침체를 의미하는 'R'(Recession)의 먹구름으로 미국 자동차업종 전체에 파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전세계 경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해운업계 역시 사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해운업계 내년 운송일수 40%에 머물러=원자재를 운송하는 벌크선의 움임을 반영하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 10일 820까지 하락했다. 이는 지난 5월의 1만1793에 비해 93% 급락한 것이다.
해운업체들이 일반적으로 1~2년 뒤 운송 계약을 사전에 맺고 있지만 현재 내년 운송일수는 40% 정도 이뤄진 상태다.
전세계 수출입 운송이 대부분 해운산업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내년 운송 계약 현황은 그야말로 침체의 끝을 보여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실물경제에 대한 위기감은 상품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는 배럴당 3.08달러 하락한 59.33달러를 기록했다.
금값 역시 온스당 13.70달러 하락한 732.80달러를 기록하는 등 원유와 비철금속 등 상품가격의 하락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구리 가격은 t당 5% 하락했으며 알루미늄과 니켈 역시 약세를 면치 못했다.
곡물 가격도 급전직하로 이뤄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옥수수 12월물 가격은 부셸당 2.4% 하락했고 대두와 쌀 등 주요 곡물 가격이 모두 하락했다.
◆중동에도 'R' 먹구름 확산=R의 공포는 오일머니의 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중동에도 돈줄을 말리고 있다. 신용위기 사태에 유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중동 기업들이 잇따라 대형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 최대 가공업체 중 하나인 알루미늄 바레인은 수십억달러 규모의 대형 설비 확충 프로젝트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1년간 국제유가 추이 (출처: bigcharts) |
일반 기업은 물론 인프라스트럭처 등 사회기반시설 프로젝트 역시 줄줄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전력 및 수자원 프로젝트는 최대 70%까지 자본을 차입해 진행된다. 현재와 같이 자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절반 이상의 자본을 차입해야 하는 인프라 프로젝트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러시아 위기감 고조, 루블화 가치 급락=R의 공포와 유가 급락 여파는 자원대국으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는 러시아에까지 번지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러시아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 환율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루블화 가치는 지난 2007년 2월 이후 최저치로 추락한 상태다.
러시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선이 붕괴된데다 러시아 증시가 올들어 70% 가까이 폭락하면서 경제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이는 다시 루블화 가치 급락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사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러시아에 금융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가즈프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
러시아 정부는 2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쏟아붓고 있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외환보유고의 급감이라는 역효과만 낳고 있다.
세계 3위 외환보유국인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올초까지만 해도 6000억달러가 넘었지만 최근 5000억달러로 줄어든 상태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러시아 당국은 사태 진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1일 밤 익일물 금리를 7%에서 8%로 1%포인트 인상했으며 리파이낸싱 금리도 12%로 끌어 올렸다.
문제는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환율 방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세르게이 이그나티예프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루블화가 추가적으로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998년 발생했던 러시아의 모타토리엄 사태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덴마크 단스케 뱅크의 라스 크리스텐슨 이머징마켓 리서치 부문 책임자는 "시장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러시아 내부에서 패닉과 같은 루블화 매도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8년 러시아 정부가 400억달러 규모의 부채에 대한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당시 루블화 가치는 달러 대비 71%나 폭락한 바 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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