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윤석열 대통령(63)과 함께 한·일 관계 해빙을 이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67)가 이달을 마지막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이에 기시다 총리 퇴임 이후에도 한·일 관계의 해빙 무드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6~7일 재임 중 마지막 방한 일정을 가졌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에 세찬 비가 온 적도 있지만, 윤 대통령과 비에 젖은 길로 함께 발을 내디디며 다져온 여정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작이었다"며, 차기 정부 들어서도 한·일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따라서 차기 총리가 거의 내정되다시피 했던 종전과는 달리 현재로서는 차기 총리는 물론 정권 기조도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한·일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 3년간 이어진 해빙 관계의 지속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6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따르면 히나타-야마구치 료 도쿄대 부교수는 차기 일본 정부가 이전 정부들의 외교 안보 정책 기조를 거의 이어받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는 지속성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일 3자 간 협력적 관계라는 큰 틀은 변하지 않겠지만 차기 일본 정부는 역사 및 주권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대한 유연성과 인내심이 (현 정권에 비해) 낮을 수도 있다"며 "특히 보수적 성향이 강한 총리가 집권하게 되면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총리 후보 인물 중 보수 성향이 강한 인물로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가미카와 외무상을 비롯해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68),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63) 등이 꼽힌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동아시아학 교수 역시 미국 매체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에 "한국과 안보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면서도 "자민당 내 일부는 한국과 관계를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훨씬 더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 내 반일감정도 걸림돌이다. 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윤석열 정부가 차기 일본 정부와도 계속해서 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이라면서도, 라인 야후 사건과 사도광산 등재 및 일본 주요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과 관련해 한국 내 반일 목소리가 높은 점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 총리 후보군 중 고이즈미 전 환경상과 다카이치 경제안보상 등은 지난달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아울러 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피해를 본 조선인들의 증언을 담은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포럼 스페셜 부문에 초청되자 주독일 일본대사관은 올해 1월 영화제 운영 책임자 사무소에 연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교도통신은 "재외공관이 문화 이벤트 주최자와 접촉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났다"며 "제작자를 위축시키고 표현의 다양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곳곳에 뇌관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무조건적으로 낙관하기는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이 와중에 한·미·일 협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의지가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애틀랜틱 카운슬 산하 인도태평양 안보 구상(IPSI)의 로렌 길버트 부국장은 미국이 한·미·일 협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자 및 양자 간 각종 협력체를 정례화하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차기 총리는 내달 1일 선출 예정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