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
세계는 전쟁 중이다. 이스라엘-하마스를 중심으로 한 중동 분쟁이 세계인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종식에 대한 기대조차 사라졌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외치고, 미국은 ‘세계의 대만’이라 외치고 있다. 중국의 무력 도발 위험에 미국은 대만 총통 당선인 라이칭더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 땅 바로 옆에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경학적 분절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은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학자 69%는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로 인해 세계 경제가 더욱 흐려질 것으로 판단했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진전되던 세계 경제에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분절화가 진전되는 국면에서는 위협이 많아질 것이다.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만큼 세계 주요국들은 방위비 지출을 늘리는 모습이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는 2024년까지 방위비를 최소 GDP의 2%까지 지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회원국들은 각국이 GDP 대비 2.5%를 방위비로 지출하는 것에 합의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참고로 2022년 기준 세계 방위비 예산은 GDP의 2.3%에 달한다. 미국의 2024회계연도 국방예산은 지난해보다 약 3% 늘어난 8860억 달러(약 1152조원)였다. 일본의 2024회계연도 방위비는 약 73조원에 달하고, 전년보다 16% 이상 증대시킨 규모다. 한국의 2024년 국방예산도 59조4000억원으로 2023년 57조원에서 약 4.2% 증액됐다. 2023년 세계 방위비 지출은 약 2조47억 달러에 달하고, 2028년까지 연평균 4.9% 증가해 2조546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하는 방위산업
세계 경제에서 방위산업의 지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방위산업은 국가 방위를 위하여 군사적으로 소요되는 물자의 생산과 개발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정의한다. 협의의 방위산업은 국방력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총·포·탄약·함정·항공기·전자기기·미사일 등 무기장비의 생산과 개발로 범위를 한정하지만, 광의의 방위산업은 무기·탄약 등 직접적인 전투기구뿐만 아니라 피복·군량 등 비전투용 일반 군수물자까지도 포괄하기도 한다. 방위산업의 경제적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국방, 외교, 안보 등의 면에서도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인공지능, 우주·항공, 로보틱스, 반도체, 사물인터넷 등 고급 기술이 집약되는 첨단산업이라는 점에서 미래 유망 산업의 성장에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된다.
세계 방위산업(defense industry) 규모는 세계가 분절화하고 국지적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방위시장(defense market)은 2021년 기준으로 약 2조1551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에서 2027년 약 2조8887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방위산업은 2027년까지 연평균 약 5.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이는 세계 경제 연평균 성장률 약 3.5%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세계 경제에서 방위산업의 역할(비중)이 커짐을 의미한다.
세계 주요국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려나가고, 방위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방위산업 수출의 기회가 커진다. 2020년까지는 K-방산 수출액이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2021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해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2022년의 K-방산 수출 대상국이 4개국에 불과했고, 폴란드에 대한 수출이 72%를 차지할 만큼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지만 2023년 들어 12개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국방부 방위사업청의 2024년 수출 목표치는 200억 달러이고, 수출 대상국을 확대해 나가면서 동시에 무기와 무기체계 수출 품목의 다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주요 기업들의 추가적인 계약 체결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방위산업 전략의 재편
세계 방위산업에서 한국의 지위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세계 군사비 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무기수출 점유율은 2018~2022년을 기준으로 약 2.4% 수준에 달한다. 세계 무기수출 순위 1위 미국(40%), 2위 러시아(16%), 3위 프랑스(11%), 4위 중국(5.2%), 5위 독일(4.2%), 6위 이탈리아(3.8%), 7위 영국(3.2%), 8위 스페인(2.6%)에 이어 한국은 9위 자리에 있다. 민간 분야의 제조 경쟁력과 내수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이 가진 장점을 살리고, 방위산업 선진국과 기술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군사·안보적인 긴장감이 고조되고, 각국이 군비를 증강시키고 있다는 기회가 있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지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첫째, 독자적 방위산업을 구축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방위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핵심 기술이 집약되는 중추산업으로서 기회를 포착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방위산업이 주요국을 빨리 뒤쫓아간 것이었다면 이제 주요국들이 뒤쫓아 오도록 해야 한다. K-방산은 이제 그동안 없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국가방위산업전략(NDIS·National Defense Industrial Strategy)’을 발표했고, 중국 등 대외 의존에서 탈피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세계가 분절화되고 있으므로 기존의 방위산업 밸류체인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기존의 소재나 부품의 공급망이 깨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독자적 방위산업 생태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움직임이 필요하다.
K-방산이 도전해야 할 두 번째 방향성은 첨단화다. 한국이 축적해온 방위산업 고유의 기술과 반도체, ICT, 로보틱스 등의 기술들을 집약한 선도적인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데 국방 R&D 투자가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Business Research Insights)는 미래 방위산업의 두 가지 핵심 요소를 꼽았다. 한 가지는 초경량·고성능 소재(lightweight, high-performance materials)를 개발하는 것이고, 두 번째 요소는 현대화에 대한 투자(investment in modernization)를 진척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방위시장 수요가 어떠한 방향으로 형성될 것인지가 자명하므로 첨단화라는 K-방산의 방향성도 자명한 것이다.
세 번째 방향성은 지속화다. 전술했듯, 2024년 국방예산이 2023년보다 4.2% 증액된 59조4244억원에 달한다. 2024년 정부예산 증가율이 2.8%임을 고려하면 국방예산은 상당한 수준으로 증액 편성된 것이다. 이 예산에는 보라매, KF-21 최초 양산이나 레이저대공무기, 고고도 요격유도탄 등 사업뿐만 아니라 K-방산 수출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일시적으로 예산을 증액하고, 일시적으로 수출 지원을 제공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을 하나의 성장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기획하고, 국제방산협력 및 수출지원 시스템을 확보함으로써 지속 성장이 가능한 방위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