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터넷 공룡 바이두가 ‘탈(脫)엔비디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수출통제 조치로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용 반도체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대안으로 화웨이를 선택했다. 미국의 제재가 자국 기업의 입지 축소는 물론 오히려 두 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두는 지난 8월 화웨이에 910B 어센드 AI 반도체 1600개를 주문했다. 어센드칩은 화웨이가 엔비디아의 AI 용 반도체인 A100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제품으로, 엔비디아의 반도체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중국산 반도체 중에선 가장 정교한 성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바이두는 더 이상 엔비디아 칩을 구매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화웨이의 어센드칩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바이두가 엔비디아로부터 사들인 반도체 물량에 비하면 규모는 다소 작지만, 중국 기업들이 어떻게 탈 엔비디아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이두는 올해 초 챗 GPT 대항마로 개발한 AI 챗봇 ‘어니봇’을 내놨다. 어니봇의 기반은 거대언어모델(LLM)인데, LLM 개발을 위해 바이두는 엔비디아의 A100에 의존해 왔다. 이후 A100 수출이 통제되자 바이두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저성능 칩인 H800과 A800을 여러 개 결합하는 방식으로 기술 개발을 해왔는데, 지난달 이 두 개의 칩도 수출 금지 리스트에 포함됐다. 바이두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자국 기업인 화웨이와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가 오히려 중국 반도체 기술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바이두는 텐센트, 알리바바 등과 함께 엔비디아의 대표적인 중국 내 고객사였다. 바이두가 화웨이 반도체를 준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기회로 삼은 화웨이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이끄는 기업으로 우뚝 올라섰다. 화웨이의 기술 발전 속도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지난 8월 화웨이는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를 내장한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공개했다. 이후 메이트60 프로에 탑재된 첨단 프로세서가 화웨이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고성능 반도체 ‘기린 9000s’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를 뚫고 기술력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가 70억 달러 규모의 중국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기회를 잡게 됐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