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대북 전단 살포와 '표현의 자유'

2023-11-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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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대표
[김영윤 대표]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 1항 3호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법률조항은 ‘대북 전단 살포와 같이 북한을 향해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헌재가 이 조항을 위헌으로 본 까닭은 대북 전단 살포금지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근거를 헌재는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만한 표현은 상당히 포괄적일 수 있는데, 본 법률조항이 그것을 뭉뚱그려 제한’하고 있는 데서 찾고 있다. 또한, 북한이 비록 전단지 살포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했어도 그 책임을 모두 전단 살포자에게 전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헌법재판소가 판결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법률적 언급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남북관계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대북 전단 살포가 가진 문제점과 위헌 판결에 따른 향후 과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대북 전단 살포의 실효성 문제다. 대북 전단을 보내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살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그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전단의 내용에 동조한다고 해도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에서 그것이 확산(擴散)하기가 매우 어렵다. 전단을 소지하는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단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은커녕,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심화하는 상황이 되기 쉽다. 더 나아가 전단에 담긴 내용을 보고 북한 주민이 스스로 자신이 처한 인권 실상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전단지가 그들의 최고 영도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고도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문제라면 국제 사회와 공조하여 문제를 정식 제기하거나, 북한 스스로 개방의 길로 나서고 이를 통해 주민의 삶이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 전달의 통로가 된다고 하지만 이 또한 별 실효성이 없는 이야기다. 작금의 북한 주민들은 접경지역이나 장마당을 통해 남한을 비롯한 외부의 정보를 더 많이 접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대부분은 남한이 그들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음을 알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이는 전단의 힘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얻은 정보의 힘 때문이다.
 
둘째,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그들이 추구하는 순수한 목적에 부응해 전단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는 통상 전단 살포에 앞서 이를 사전 홍보한다. 조용히 몰래 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심지어 그 장면을 생중계하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후원금 확보를 위해서다. 전단 살포단체를 후원하는 사람들은 실제 그와 같은 이벤트를 직접 볼 때 후원에 더 적극적인 편이다. 전단이 북한을 심하게 자극하는 내용일수록 더 크게 호응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목표하는 전단 살포가 후원금 획득에 더 민감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겐 해외 기관으로부터의 후원금 확보 여부도 큰 관심사다. 이의 중요한 대상이 되는 기관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 약칭 민주주의진흥재단)’이다. NED는 비정부기구이나,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어 국고를 지원받는 기관이다. NED 기금의 절반이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 단체를 위해 사용된다. 한국의 유수 탈북자 단체들도 이 자금을 얻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 NED가 남한의 탈북자 단체에 지원한 금액만 해도 총 4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냥 지원하는 돈은 아니다. NED 자금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우고 있지만, 미 정부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 단체들은 그들이 가진 고유한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스폰서(sponsor)의 입장을 그대로 옮기는 행동에 치중하기 쉽다.
 
셋째, 더 큰 문제는 전단 살포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적대적 남북관계다. 여기에는 군사적 행동과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 또는 개연성이 가장 큰 문제다. 북한은 날아오는 전단을 향해 실제 고사총을 발사(2014.10.10.)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우리 군도 맞대응했다. 전단 살포 행위를 들어 북한은 개성에 있었던 남북연락사무소 건물 폭파(2020.6.16.)도 서슴지 않았다. 이와 같은 대결적 상황은 접경지역의 주민에게 가해지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물론, 남북한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도 이어질 가능성마저 존재케 한다. 북한의 보복이 두려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 전단 살포를 금지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은 방법을 찾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다. 요즘과 같이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이제 그 효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제시된 과제는 무엇인가? 법률적 보완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전단 살포가 갖는 문제를 지혜롭게 푸는 것이다. 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결의 방향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단 살포가 남북한 사이의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모두의 동의가 가능하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에 반대한 태영호 의원도 “정부와의 충돌을 불사하는 공개적인 대북 전단 살포는 반대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판결한 헌재의 재판관들도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에 대해서는,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이 경우에 따라 경고·제지하거나 사전 신고 및 금지 통고 제도 등의 대안을 통해 보완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전단 살포 금지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충분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정 수준의 전단 살포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무차별한 전단의 살포보다는 식량이나 달러 등 지원물자에 국한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인권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인권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해를 끼치고 위협을 줄 때는 제한이 필수적이다. 전단 살포 때문에 전쟁해야 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현재의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에 앞서 ‘안전의 자유’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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