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활동과 건강에 직결된 ‘수면’의 질을 높이는 디지털 기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모바일 기기로 생체 신호를 분석하는 방식을 넘어 수면 공간에 함께 두거나 침구와 결합해 한층 더 정교한 수면 관리 제품과 서비스가 늘었다.
8일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슬립테크 기기 시장 규모는 2022년 179억 달러(약 24조원)로 추산되고, 올해부터 2032년까지 18.2%씩 증가해 952억 달러(약 12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슬립테크 주자들은 이용자 머리맡에서 수면 중 신체 움직임을 추적하거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수면 주기를 최적화해 소위 ‘꿀잠’을 재워 주는 것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주요 플레이어를 소개한다.
◆숙면·각성 돕는 생체시계 친화 조명 ‘올리’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 1시간 이내에 충분한 빛을 받아야 인체가 ‘낮’을 인지하고, 잠들기 2시간 전부터 충분히 어두운 환경에 있어야 인체가 ‘밤’을 인지하고 잠들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빛에 노출되면 수면 조절 호르몬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고 어두울 때는 멜라토닌이 분비돼 졸린 상태가 된다. 2019년 설립한 루플은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인간 중심 조명(HCL)’이라 명명한 생체시계 친화 조명 기기 ‘올리(Olly)’를 개발해 출시했다.
루플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 눈에는 낮과 밤을 인지하는 ‘감광신경절세포(ipRGC)’가 있다. ipRGC는 눈을 통해 들어오는 파장 대역 480나노미터(㎚) 빛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수용체 ‘멜라놉신(melanopsin)’을 통해 이 빛이 많을 때 ‘지금이 낮’, 빛이 적을 때 ‘지금이 밤’이라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 이 파장 대역 480㎚ 빛의 단위 면적 당 밝기를 ‘멜라노픽 조도’라고 하는데, 올리는 이 빛의 조도를 조절하는 HCL로 시간대에 알맞은 수면 주기 형성을 돕는다.
잠들기 전에 숙면을 위해 사용하는 ‘올리 나이트’와 아침·낮에 각성하기 위해 쓰는 ‘올리 데이’가 있다. 올리 데이는 파장 대역 480㎚ 빛을 멜라노픽 조도 500 이상으로 제공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낮 시간 집중력·각성도를 높여 준다. 올리 나이트는 멜라노픽 조도 10 이하 조명으로 인체의 멜라토닌 생성 활성화, 안정적인 휴식과 숙면을 유도한다. 올리의 HCL은 생체시계에 영향을 주는 멜라노픽 조도 조절에 특화한 기기로 여타 LED 기반 인공 조명과 구별된다.
올리 개발사 루플은 올해 3월 헬스케어 기업 해피문데이에 전략적 투자를 받았다. 양사 계약에 따라 해피문데이는 국내서 올리 제품에 대한 B2C 총판 사업을 맡고 있다. 해피문데이 관계자는 “현대인은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인공조명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고, 그러다보니 생체시계가 자연빛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올리는 멜라노픽 조도를 조절해 생체리듬과 수면을 관리할 수 있는 간편하고도 핵심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코골이 방지 스마트 베개 ‘모션 필로우’
보편적인 수면장애 질환으로 분류되는 ‘코골이’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제품도 있다. 2014년 설립한 슬립테크 기업 텐마인즈(전 ‘코리아브레오’)의 스마트 베개 ‘모션 필로우(Motion Pillow)’다. 모션 필로우는 에어백을 넣은 베개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면 데이터를 포착하는 센서, 베개의 에어백을 조절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과 모바일 앱으로 작동한다. 일반 베개처럼 모션 필로우 베개를 베고 자는 동안 AI는 사람이 코를 고는 순간을 감지해 코골이를 방지한다.
텐마인즈 설명에 따르면 모션 필로우를 사용한 사람은 수면의 질을 유지하면서 코골이 소리와 코골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일반 베개를 사용한 경우에 비해 수면 효율이 높아지고 총 수면 시간이 증가하고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며 렘(REM)수면 비율이 증가하는 등 수면 구조가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REM수면은 전체 수면 시간 중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며 기억과 학습 등 지적 활동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션 필로우는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첫 CES 혁신상을 수상하고 2022년과 2023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CES 혁신상을 거듭 수상했다. 올해 1월 치른 CES 2023 현장에서 텐마인즈가 선보인 업그레이드 버전 모션 필로우는 에어백 4개를 내장해 사용자의 코골이를 분석하고 머리가 놓인 위치만 부풀리는 AI 모션 시스템과 특허 기술로 소음을 최소화한 노이즈 캔슬링 모듈, 사용자 수면 습관과 코골이 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관리 전용 앱을 제공한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이어져… 삼분의일·슬로웨이브·프라나큐
벤처투자 업계에서 슬립테크 분야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수면 관리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업체가 슬립테크로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서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가격 거품을 뺀’ 매트리스 제조사로 출발한 삼분의일은 2021년 알토스벤처스, DSC인베스트먼트, 딜라이트룸, 캡스톤파트너스 등이 참여한 12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삼분의일은 이 투자 유치를 계기로 슬립테크 분야로 제품군 확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예고했다. 올해 1월 수면 데이터 기술 기업 ‘바이텔스’를 인수했고 7월 자동 온도 조절과 수면 데이터 수집, 분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매트리스 ‘슬립큐브’를 출시했다.
2022년 11월 설립한 슬로웨이브는 지난 7월 스파크랩, 킹슬리벤처스, 디캠프, 더벤처스가 참여한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한 뇌파 모니터링 패치와 측정 솔루션으로 불면증 환자 수면 상태를 정밀 진단한다. 환자의 수면 간 움직임, 맥박, 산소포화도, 뇌파 위상정보 분석 데이터를 수집해 의료진이 장애를 진단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우도록 돕는다. 슬로웨이브는 시드 투자금을 활용해 기술을 고도화하고 국내외 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네이버도 산하 기업형벤처투자회사(CVC)인 D2SF를 통해 ‘프라나큐(PranaQ)’라는 슬립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2022년 12월 당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네이버 D2SF는 출범 7년 만에 100번째 기술 스타트업 투자 대상으로 프라나큐를 낙점했다. 프라나큐는 피부에 LED 빛을 비춰 혈류를 측정하는 ‘광혈류측정(PPG)’ 방식으로 수면 중 산소포화도, 심박변이도, 호흡기 관련 생체신호를 측정해 수면 품질을 파악하는 기술에 2023년 미국 FDA 의료기기 인증을 받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