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의 인도네시아 관련 보도는 과거와 비교해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교류 확대에 발맞추어 다양한 분야에서 인도네시아 관련 뉴스가 보도되기 때문이다. 이런 뉴스 중 상당수는 일부 언론의 단편적 보도로 끝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찾을 수 있다. 많은 언론이 동일한 뉴스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인도네시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개정 전 인도네시아 형법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제정된 법률의 기본틀을 유지한 채 부분적인 수정만이 가해진 상태였다. 이로 인해 형법을 개정하자는 요구가 오랫동안 제기되었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 후 2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새로운 형법 체계가 완성되었다. 개정안 초안이 몇년 전 처음 공개되었을 때 시민 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에 대한 반대는 점차 수그러들었고, 소수 조항만이 막판까지 문제시되었다. 대통령과 국가 기관에 대한 모독죄, 허위 뉴스나 유언비어 유포죄 등과 같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항과 비교할 때 인도네시아 국민의 핵심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혼전 성관계 금지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이슈였다.
개정 전 형법에서 다루던 문제는 간통죄로서 기혼 남녀가 연루된 혼외 성관계는 기소의 대상이었고 최고 9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었다. 개정 형법에서는 미혼 남녀의 성관계를 간통과 같은 범주로 취급할 뿐 아니라 혼전 동거 역시 범죄로 규정했다. 결과적으로 개정 형법은 혼인을 매개로 하지 않는 모든 성관계를 불법화한 셈이었다. 그에 대한 처벌 역시 강화되어 최고 1년의 징역형이나 벌금형 선고가 가능해졌다.
백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간통죄와 달리 혼전 성관계는 개인의 자유, 사생활 보호와 관련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간섭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개정 형법은 국가의 개입권을 인정했는데, 여기에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논리, 즉 성관계를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나 사생활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작동했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한 근거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농촌 지역의 전통 관행이었다.
인도네시아 농촌 마을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직접적이고 집합적으로 대응하는 전통을 유지해왔다. 마을 구성원에 대한 외부인의 공격이나 절도는 외부 위협의 전형적 사례인데, 여기에 마을 외부 남성과 마을 여성 간 교제가 포함되기도 했다. 폭력이나 절도와 비교할 때 이성 교제는 훨씬 복잡한 문제로서 공동체적 대응을 필연적으로 유발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공동체적 대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다. 혼전 성관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 이웃, 나아가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문제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혼전 성관계를 범죄화하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형법 개정을 지지한 측이 제시한 두 번째 논거는 종교로서, 이들은 인도네시아 국민의 절대다수인 87% 정도가 무슬림이며 이슬람에서 혼외 성관계를 금지한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비무슬림과 관련하여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국가 이념 중 하나가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고 모든 종교에서 프리섹스를 금기시하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혼전 성관계 금지의 보편적 성격을 부각하고자 했다.
형법 개정안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습과 종교가 이용되었지만, 그중 이슬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종교 중 이슬람에서 혼전 성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금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혼외 성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개정 형법에서는 토착어 대신 ‘지나’(zina)라는 아랍어 표현이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법 개정안에 이슬람 교리가 온전하게 적용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이슬람식 처벌 방식인 태형이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교리가 반영되었지만, 부분적으로만 적용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전개되어 온 종교적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교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무슬림이 급증했다. 이슬람 부흥 혹은 이슬람화라고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은 사적 영역에서 먼저 시작해서, 매일 5차례의 기도, 1년 중 한 달간의 금식과 같은 의무를 충족하고자 노력하는 무슬림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이슬람화의 영향력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 공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외부인이 이런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던 사건 중 하나는 2010년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해 시행된 편의점에서의 주류 판매 금지였다. 무슬림 다수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규정이 최근에야 제정되었음에 혹자는 놀라움을 표할 수도 있지만, 어디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던 술을 특정 마트나 식당으로 제한했다는 점에서 가시성을 지닌 행보였다.
외부인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이슬람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는 조례가 제정되었다. 학교 진학이나 공무원 임용 과정에서 경전 낭송 능력을 의무화하거나, 금요 예배 참여와 이슬람식 의복 착용을 강제하거나, 마사지 시설과 도박을 금지하거나, 심지어 여성의 외부 출입을 제약하는 조례가 만들어졌다. 국가적 수준에서는 2014년 할랄제품보장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상품에 할랄 인증, 즉 이슬람 교리상 허용되는 재료를 사용했음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슬람의 요소가 지방 조례나 국가법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이슬람법이 국가법 체계에 충분히 스며들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슬람의 요소가 이분법적 방식이 아닌 절충적인 방식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할랄제품보장법을 예로 들면, 이 법은 할랄 인증 표기를 의무화했지만,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제품의 유통 자체를 불법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술과 돼지고기와 같이 이슬람에서 금지한 물품의 판매가 용인되었다.
혼전 성관계 금지 조항에서도 절충적인 성격을 찾을 수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혼전 성관계는 부모나 자녀의 고소를 통해서만 공소 제기가 가능한데, 이는 혼전 성관계가 현실에서 범죄시되기보다는 성관계를 맺은 남녀에게 결혼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혼전 성관계 사실이 알려지거나 여성이 임신했을 때 이들의 결혼을 압박하는 공동체적 압력이 과거에도 작동했음을 고려해보면, 개정안은 이런 관습을 뒷받침하는 추가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혼전 성관계 금지 조항의 삽입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되어 온 종교적 변화와 같은 궤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이슬람 교리를 국가법 체계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의 일환으로서, 국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라는 현실이 법 제정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슬람 세력의 주장을 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개정 형법은 절충적인 내용을 내포함으로써 인구의 13%가 비이슬람 교도라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두 입장이 공존함으로써 인도네시아 사회는 아직 강한 이슬람의 색채로 채워져 있지 않다. 이슬람과 다원성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치경제적 안정 상태가 지금처럼 유지될 때, 그 균형추가 이슬람 쪽으로 급격히 이동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명확한 듯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 (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Pak Kim yang terhormat, mohon ditulis dalam bahasa Indonesia juga agar orang Indonesia dapat membacanya. Teman-teman penasaran dan ingin membaca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