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 살인 딸은 엄마보다 아빠인 나와 함께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는 엄마와 달리 스마트폰을 양보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운전하고 딸은 아빠의 폰을 가지고 논다. 그런 습관이 싫어 타박하려고도 생각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차 안에서 폰을 가지고 노는 모습에서 자동차의 미래 모습을 본다. 어쩌면 내 딸이 차를 구매할 시점이 되면 그 차는 세상에서 단 한 대밖에 없는, 그녀가 좋아하는 앱(App)들로 가득찬 스마트카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마치 20년 전 피처폰 시대에는 매장에서 구매한 폰 그대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앱을 다운로드해서 나만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처럼.
사실 SDV와 자율주행의 두 가지 트렌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지와 판단의 주체인 인간이 운전에 책임지지 않는 자율주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차량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센서, 통신, 학습 및 제어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자율주행 단계에서 ‘인지’는 갈 길이 멀지만 ‘판단’만큼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한다. 그만큼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 수준이 빠르게 발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율주행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이 실제로 되고 있다는 뉴스를 듣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지금은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만 자율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자동차기술회(SAE·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에 따르면, 글로벌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는 자율주행의 단계에는 0단계부터 5단계까지 모두 6단계가 있다. 그중에 0~2단계는 운전자가 메인이고 자율주행 시스템은 보조적인 기능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가 자율주행이라고 상상하는 단계는 3~5단계로서, 3단계는 조건부 자율주행, 4단계는 고도 자율주행, 그리고 5단계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로 불린다. 여기에서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주로 운전을 담당하는 단계이다. 단, 3~4단계는 어떤 조건에서라는 단서가 붙는 경우이다. 아직 5단계인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국가는 없으며 대부분 3단계인 조건부 자율주행은 펼쳐지고 있다.
아직은 4단계에 와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를 위한 정책은 준비되어 있다. 2022년 발표한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의 내용에 따르면 정부의 목표는 2027년에 완전자율주행, 즉 5단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3단계 수준의 안전기준을 마련해 좋은 상태이기도 하다. 2024년까지는 4단계 수준의 자율차 안전기준을 구비해 놓을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그 이전이라도 자율주행차의 성능을 확인하고 인증한 후 허가대상과 운행목적, 범위를 한정하여 운행을 허가하는 성능인증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차의 기술 개발 및 판매가 촉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의지 및 기술 개발 등의 노력으로 자율주행 차량은 더 많이 등장할 것이고 이동의 편의성을 넘어 차량 내 공간의 활용 역시 다양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능과 편의성과 함께 중요한 이슈는 안전성이다. 99.99% 안전하다고 해도 단 0.01%의 가능성으로 발생한 사고는 치명적이다. 특히, 운전을 누가 했는가에 대한 쟁점이 크게 불거질 것이다. 아직은 사람과 시스템이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4단계의 자율주행이 가능할 경우 운전자 중심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제도가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람 혹은 시스템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부터 시작하여 보상기준이나 범위 등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다. 사고에 대한 책임 및 보상의 원칙은 피해자와 함께 자율주행차 이용자를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 보상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도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보상의 기준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SDV(Software Defined Vehicle)와 자율주행. 미래의 자동차는 이러한 기능들이 결합된 스마트카의 모습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사랑했던 딸의 인생 첫 번째 차는 그녀가 원하는 앱들로 가득한, 그녀만의 개성이 구현되는 공간이 될 것이다.
홍준표 수석연구위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 신성장전략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