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민주당 '전주乙 무공천'· 국민의힘 '하영제 체포 동의', 정치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2023-04-1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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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정치적 유불리 따라 도덕적 잣대 오락가락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월 5일 실시된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당의 귀책 사유로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는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에 따른 조치다. 국민의힘은 지난 3월 30일 실시된 국민의힘 소속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 표결 때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체포 동의를 뜻하는 '가(可)' 표결을 독려했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여러 차례 선언해온 데 맞춰 이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 두 사안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자신들이 약속한 도덕 원칙을 모처럼 실천에 옮긴 사례로 꼽을 만하다. 정치가 국민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은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두 당 모두 겉보기에는 도덕 원칙을 지킨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동안의 행태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도덕을 정략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북 전주을은 민주당 출신 이상직 전 의원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이 박탈돼 재선거를 치르게 됐다. 이 전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선거 전 당내 경선 과정에서 허위 응답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당원에게 보낸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작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4월에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작년 12월  전주을 무공천 방침을 정했다. 이 전 의원은 당헌 96조 2항에 규정된 귀책사유(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로 의원직을 상실한 게 아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한다면 무공천을 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무공천을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은 앞서 2021년 4월 실시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는 당헌을 개정까지 해가며 후보를 공천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이 성희롱·성추행 사건으로 자살하거나 사퇴하는 바람에 실시됐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같은 고위 공직자가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 또는 성추행한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직위라는 권력을 이용한 행위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상직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훨씬 더 중대한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이  당헌 규정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헌을 개정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전 당원 투표 결과를 내세워 2020년 11월 3일 당헌을 개정했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의 귀책 사유를 제공한 경우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96조 2항에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 단서 조항을 근거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했다. 

 
민주당, '무공천' 당략적 계산 아닌가
 

당시 민주당은 “후보를 내서 국민 심판을 받는 게 책임정치에 더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게 변명에 불과하고 속셈이 따로 있음은 누구나 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그 속셈이 무엇인지를 숨김없이 털어놨다. 우 의원은 2020년 10월 방송 인터뷰에서 “(보궐선거는) 대선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민주당이 정한 방침을 일부 수정한 것은 국민들께 죄송한 일이지만 (보궐선거는) 일정한 책임을 지는 문제를 넘어서 대통령 선거 성패까지 영향을 주는 선거라 정당으로서 이렇게 선택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가 후보를 내지 않아 국민의힘 후보들이 사실상 의미 없이 당선된다고 치면 연일 반정부적 행보를 하게 될 경우에 주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따질 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서울·부산시장 보선은 서울과 부산이라는 최대 도시의 민심을 가늠하고 붙잡는 선거다. 그 민심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비해 전주을 보궐선거는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지역 선거일 뿐이다. 민주당은 이미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의원 한 명 잃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다. 더구나 전주을은 민주당 텃밭이다. 언제고 민주당이 탈환할 수 있다.  

 

결국 당초의 약속을 위반했다는 욕을 먹더라도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서울·부산시장 보선에는 후보를 공천한 것이다. 반면에 전주을은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에 미치는 효과가 거의 없고 오히려 ‘무공천 약속’을 지킨다는 생색을 낼 수 있어 유리하다고 계산해 무공천을 한 것이다. 어느 경우든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기준으로 ‘귀책 사유 제공 시 무공천’이라는 당헌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기도 하고 존중하는 척하기도 한 셈이다. 이런 게 바로 도덕을 정략의 수단으로 삼는 행태다. 불리하더라도 당헌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고 지킨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전주을 무공천에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 '체포 동의', 이재명 압박용 아닌가
 

국민의힘이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 표결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한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 때부터 민주당에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물론 이 대표가 그 빌미를 제공하긴 했다.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 포기 대선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며 말을 바꿨다.  

 

그는 “평화시대, 모두가 규칙을 지키고 예측 가능한 사회에는 담장도 없애고 대문도 열어 놓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강도·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하고 대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야당 탄압을 하고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국민의힘에는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이렇게 말을 바꾼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좋은  소재였다. 국민의힘은 연일 자신들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의원 51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자기 당 소속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을 처리하게 됐다. 국민의힘은 자기들부터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겠다며 하 의원 체포 동의안에 당론으로 찬성했다. 

 

그러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불체포 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정하고 나왔을까? 민주당에 대한 불체포 특권 포기 공세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의원 수십 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 대국민 서약을 했을까? 국민의힘이 과거 그 전신일 때를 통틀어 지금처럼 불체포 특권 포기를 강하게 주장한 적은 없다. 국민의힘이 정말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의 문제점을 깊이 느겼다면 진작에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도 있었고 그래야 했다. 그러나 지금껏 손 놓고 있다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공격할 빌미가 생기자 불체포 특권 포기를 들고 나왔다. ‘정치적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국민의힘이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에 사실상 당론으로 찬성한 것도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불체포 특권 포기 공세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압박하는 것이 하 의원 체포 동의안 찬성으로 그가 구속돼서 의원 한 명을 잃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정치적 유불리라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도덕 원칙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주을 무공천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 찬성에 박수만 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일관성 보여서 진정성 입증해야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도덕성 실종이다.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도덕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도덕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지키려 하기보다 선거 승리나 상대방 공격이라는 정략의 수단으로만 삼는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행위의 ‘동기’라고 했다. 그는 동기를 쾌락  동기와 의무 동기로 구분했다. 쾌락 동기란 어떤 일을 이익이나 쾌락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의무 동기란 그 행위 자체가 옳은 일이라서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는 쾌락 동기는 잘못된 동기이고 의무 동기만이 올바른 동기라고 했다.  쾌락 동기는 도덕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덕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으면 그 도덕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 도덕을 지키는 게 불리하면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리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주을 무공천이나 국민의힘의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은 그 동기가 ‘올바른’ 동기라고 하기 어렵다. 정치적 유불리라는 계산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눈 깜짝하지 않고 변할 수 있다. 이래서는 정치에서 도덕이 자리 잡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올바른 동기’임을 인정받는 방법은 하나다. 민주당은 앞으로 재·보선 귀책 사유 제공 시 이것 저것 계산하지 말고 무공천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기들이 야당이 돼서라도 말 바꾸지 말고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로 국민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정치의 도덕적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 나갈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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