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교육은 백년대계 …경제논리 끼어들면 미래 없다

2022-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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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2022년이 저물어 간다. 봄부터 브랜드 칼럼 ‘안상준의 함께꿈’을 쓰기 시작하여 세모를 맞이하니 마음속에서 소소한 감회가 꿈틀거린다. ‘함께 꿈을 꾸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교육에서 보고자 했다. 교육은 대한민국이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었다. 땅 팔고 소 팔고 다 팔아서라도 내 자식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절박한 소망이 이루어낸 결실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지독한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망치는 주범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교육열이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겨 대학체제 전반이 부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대학체제는 세계를 선도하기는커녕 소멸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교수로서 필자 역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는 ‘함께꿈’을 쓰기 전에 특별기획으로 네 편의 칼럼에서 ‘위기의 대학’을 다루었다. 관리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 경쟁력의 위기 그리고 소멸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위기의 근원과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대한 위기를 꼽는다면 단연 ‘경쟁력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수준은 교수의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 구성원의 역량과 관련한 정체성의 위기와 경쟁력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근원적인 문제와 맞서야 한다. 대학의 존재 이유 그리고 사회적 책무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장기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문제의 근원을 천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 관리의 위기와 소멸의 위기는 대학을 둘러싼 환경 및 정부의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 대학이 소멸하는가? 대학이 소멸해도 되는가? 소멸은 폐쇄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역의 인구 소멸에 따른 대학의 소멸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또한 대학의 소멸이 지역의 소멸을 부추기는 인과관계에 대한 정합성도 검증이 필요하다. 이런 의문과 검증에 대한 문제 제기는 대학의 본성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학은 고등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정의에는 변함없겠지만,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소멸될 수 있는 특수목적의 기관인가?

여기서 다시 한번 대한민국 대학체제의 특수성에 주목한다.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사립대학 법인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법원은 사립대학은 재단법인의 사유재산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사립대학은 공공재정을 요구하면서도 공공재정의 지원에 따른 책무와 감사는 거부한다. 그들은 등록금 인상을 주장한다. 법인의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공공성 문제가 불거지면, 부실과 비리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사립대학까지 나서서 당당하게 공공재정의 투여를 요구한다. 이러니 전반적인 대학에 대한 우호적 국민 여론이 형성될 수 없고, 대학 정책은 여기서부터 표류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국 대학체제의 발전은 요원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국립대는 대학정책의 중심에서 벗어나 방치되고, 획일적인 평가에 휩쓸려 특수한 성질을 잃어버렸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국립대학은 지방에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지방대의 위신은 나날이 추락해 나락을 향하는 지경이다. 지금의 지방 국립대들은 이미 사회적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운명을 지녔다. 한편 보수언론은 철밥통 국립대의 무사안일주의를 비난하고, 학생들은 지방 국립대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한민국 대학을 한 단계 진화·발전시킬 수 있을까? 먼저 교육 당국은 대한민국 대학체제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학체제가 미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지 대계를 제시하고 이에 맞춰 개별 대학의 특성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사명과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이때 설립 주체, 대학의 위치, 지역의 특수성, 대학의 특수한 역량 등 다양한 요소들을 평가하여 국가의 지원계획과 평가방침을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대학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교육부 장관이 언론을 향하여 쏟아내는 미래 대학정책의 방향은 국가적 차원의 대학체제 전환이라기보다는 사립대학 법인의 오랜 민원을 해결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규정과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어주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정부 재정을 투여하기 어렵고 국민의 눈총 때문에 등록금을 올릴 수도 없으니, 규제라도 풀어서 사립대학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찾으라는 조치는 아닌가 싶다.

이러한 규제 완화 대책에 사립대학의 부실과 비리를 방지할 대책은 포함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립대학 법인들이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고 교육환경이 열악해졌는데도 법인을 해산하지 않는 사태에 이를 경우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대안을 마련해놓았는지 의문이 든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고로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사람을 키우는 일에 근시안적 경제논리가 끼어들면 교육의 미래는 없다. 교육은 결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이 돈으로 보일 때 교육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교수가 강의실에서 진리를 매개로 학생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강의실에는 허위로 가득 찬 지식과 정보만 난무할 것이다. 대학이 진리의 전당만을 고집할 수 없지만, 끝내 진리의 전당이라는 기본 기능을 무시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적어도 다른 선진 국가들과 경쟁할 고등인력 양성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으니, 이것이 진정한 잘못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유래한 구절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풍조가 세상을 덮고 있으니 교수들의 탄식이 하늘을 찌른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잘못을 저지르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상대화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의 이런 행태가 자주 확인되어 국민의 불쾌지수가 매우 높아진 상태다.

과이불개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교육부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좀체 개선의 여지도, 개전의 정도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들은 극우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처럼 움직이고, 중도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대학 위에 군림하여 평가의 칼을 휘두른다. 교육정책은 5년마다 근간도 비전도 없었다는 듯이 바뀌고, 교육과정은 갈수록 퇴행한다. 얼마 전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많은 논란을 잠재우고 통과시킨 개정 교육과정을 보노라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형식은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내용은 너무나도 퇴행적이다. 국민의 의견수렴 절차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전문가 집단의 연구결과를 뒤집는 요식 행위가 되었고, 21세기 사회를 살아갈 미래세대가 배울 교과과정의 내용에 생태전환교육과 노동교육, 사회적 소수자 교육 및 성평등교육이 삭제되거나 왜곡되었다. 더욱이 연구진이 한사코 용인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용어로 결정함으로써 진실을 호도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가 다시 학도호국단이 출범하지나 않을까 싶은 기우마저 든다.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 대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내용과 이념을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자못 궁금하다. 교육이 그토록 가볍고 사소한 것인지 묻고 싶다.

미래세계는 진실로 불투명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영국의 콜린스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퍼머크라이시스’(permanent+crisis=영구적 위기)를 선정했다. 기후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코로나 팬데믹 등 장기간에 걸친 불안정과 불안이 끝날 기미가 없다는 절망적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독일 언어학회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인 ‘시대전환’(Zeitenwende)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지난 3월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연설에서 사용하였고, 전쟁이 진행되면서 핵전쟁이나 제3차대전이 심상치 않게 거론되고 또 에너지문제가 국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어 이제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고 있고, 동시에 전환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의 하강 국면이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만나 전 세계 경제를 침체 국면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인플레이션과 전기 부족 사태는 현재 유럽 각국의 서민층을 심각한 공포로 몰아넣고, 각국 정부는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보조금 지출을 감수하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청년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고블린 모드’(Goblin Mode)는 이런 청년 정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것은 ‘대충 만족하고, 나태하고, 부주의한 상태’를 가리키며, 그런 상태를 표출하며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청년 세대의 무기력한 모습을 지적한다. 드레스 코드나 사회적 교류를 거부하는 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한국 사회에 흔히 보는 청년들의 모습이 영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세계는 초연결사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렇듯 전 세계적으로 올해의 단어들이 각국의 국민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현실과 비관적인 미래를 반영한다. 더욱이 내년에는 경기침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리라고 전문가들은 우려와 경고를 쏟아낸다. 그렇다면 내년에 선정되는 올해의 단어는 금년보다 훨씬 우울하고 참혹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꿈꾸는 삶’을 지향한다. ‘함께꿈’이 있는 한 기어코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피어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역시 새해다. 새해에는 새로운 다짐, 새로운 희망으로 힘차게 출발해보고 싶다. 교육부 또한 부디 미래지향적 보편적 교육을 실천하여 필자의 기대에 등불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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