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⑱ AI, 영생으로 가는 길 열까?

2022-09-13 00:05
  • 글자크기 설정

1984년작 영화 '터미네이터' 포스터[사진=위키피디아]


1984년 영화사에 길이 남을 히어로물이 등장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제목도 섬뜩한 ‘터미네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요즘 '어벤저스'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듯이 당시에도 거대 악에 대항하여 권선징악을 펼치는 히어로물은 늘 흥행 보증수표였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거대 악은 좀 달랐다. 이번에는 인공지능(AI)이다. 당시는 발전을 거듭하는 과학기술을 이용, 미·소가 군비 경쟁을 벌이던 냉전시대. AI가 핵미사일 발사버튼을 누르고 심판의 날이 왔다. AI와 로봇들은 핵폭발의 잿더미 속에서도 일어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을 멸절하고자 소탕작전을 벌인다.
이 스토리에는 인간이 오만하게 도덕과 윤리를 등한시하면 결국 거대 악이 나타나 심판할 것이나 종국에는 메시아가 나타나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인간의 과욕 때문에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상상. 그리고 이런 초지능은 악마의 끝판왕이 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의 사신 터미네이터가 인간성을 갖게 되어 지도자를 구해내는 구원자가 되었다.

니체에 의해 “신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초월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미래형으로 투사한 것이 바로 슈퍼 AI였다. 영화 터미네이터 이전에도 AI는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터미네이터는 이 모습의 최종 보스가 되었다. 악마가 득세한다면 그 실체는 슈퍼 AI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다. 슈퍼 AI와 킬러 로봇들이 득세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부정하거나 변화에 대한 극단의 부정과 편견에 빠지는 오류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킬러에서 구원자로 바뀌었다. 미래 역사는 인간의 역사로 회귀한다는 진부한 결말에도 이 영화는 큰 감동을 남겼다. 뿌리 깊은 AI의 미래사가 등장했다.
 
미래 AI와 불가분의 관계 '인공생명'
우주에는 수많은 생명 형태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고 탄소를 기초로 하는 생명 이후의 생명 형태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가상세계를 만들고, 이 가상세계 안에서 생명체의 탄생, 성장, 진화과정 등 생명 활동의 본질을 연구하고 재현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인공생명(Artificial Life) 연구라 부른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인간 중심주의와 하나의 생명 형태, 하나의 우주라는 고정관념을 부정한다.

인공생명이란 용어는 1984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 1949~)이 처음 썼다. 그는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개최된 인공생명 워크숍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생명이 아닌, 있을 수 있는 생명을 연구하자”라고 제안하면서 인공생명 연구를 본격화했다. 그는 “생명체의 특징을 갖는 인공체를 창조하기 위한 과학의 한 분야로, 유기체가 아닌 물질을 재료로 하며, 본질은 정보이며 창발적(Emergent) 행동이 핵심이다”라고 인공생명을 정의했다.

랭턴은 단순한 규칙 몇 개로 자기 복제할 뿐 아니라 창발성을 지닌 무한 반복 루프를 만들었다. 창발성이란 외부의 작용으로 스스로 발생하고 진화, 변형, 소멸하는 생명현상을 말한다. 창발성은 인공생명의 토대라 할 수 있는데, 단순한 규칙을 적용하면 그보다 더 복잡한 규칙이 자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생명의 진화 과정이 창발적 과정의 대표적인 예이다.

AI는 인공생명처럼 생명 활동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기술이지만 인간의 지능 구조와 의식을 이해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스템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공생명과는 구별된다. 인공생명이 다양한 생명 현상을 구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데 AI는 사람의 지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학습과 적응도 생명현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AI는 일정부분 인공생명에 포함된다. 따라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고대의 수많은 신화에서는 생명체를 만드는 일을 '신의 영역'이라고 판단하여 금기시했지만 인공생명체는 인기 있는 스토리였다. 과학적 논리를 펼칠 수 없었던 고대의 인공생명체는 주술에 의존해야 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이 만든 여인 조각상은 아프로디테에 의해 생명을 갖게 되었다. 조각상이 생명을 지닌 것이니 인공생명체라 할 수 있다. 또 유대인 신화에 등장하는 골렘 또한 인공생명체라 할 수 있다. 진흙으로 만든 인형에 주문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만든 인공생명체가 바로 골렘이다.

르네상스 이후, 인공생명은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출현했다. 디지털 시대 이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놀라운 인공생명체는 보캉숑 (Jacques de Vaucanson)이 만든 인공 오리이다. 수 천개의 움직이는 부품으로 구성된 이 인공 오리는 먹고, 소화하고, 마시고, 울고, 풀에서 물장구치는 등 오리의 모든 생체활동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동인형의 정교한 움직임 속에는 철학적 난제가 내재했다. 태엽 장치의 반복성과 인간의 한계성이 정면으로 대립했던 것이다. 인간 수명은 시간에 구속되어 한정적 자아인 반면 인공생명은 동력만 제공하면 시간에 종속될 필요 없이 영생할 수 있다.
 
생명 유전처럼 자기복제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인공생명의 연구가 본격화된 계기를 마련한 것은 1818년에 출간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실험실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인공생명체에 대한 스토리이지만 여기에 담긴 아이디어와 철학이 여러 수학자와 과학자에게 인공생명체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한 구절, “나는 존재한다. 따라서 나는 생명이다”는 인공생명 연구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말이 되었다.

랭턴의 인공생명이라는 용어가 나오기도 전에 소설 속 괴물과 같은 인공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수학자 노이만 (John von Neumann, 1903~1957)이다. 노이만은 1940년대 말, 힉손 심포지엄(Hixon Symposium)에서 "생물 현상처럼 자기 재생산을 할 수 있는 논리 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이론("The General and Logical Theory of Automata")을 발표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사실상 복잡한 기계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신봉했던 노이만은 "주변 환경과 입력 정보를 결합하여 단계별, 논리적으로 행동을 하는 기계"를 고안했다.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는 컴퓨터 알고리즘만 만들어 낸다면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인공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노이만은 유기체로 구성된 생물들도 결국 유사하게 간단한 규칙들을 따르는 것이므로 프로그래밍된 정보도 규칙만 입력하면 생명체처럼 자기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만든 자기복제기계(Self-replicating Machines)는 규칙에 따라 스스로 진화하는 프로그램으로, 자신을 만드는 방법을 자신의 복제물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갖추었다. 이는 마치 부모의 유전자가 자식에게 유전되는 과정과 비슷했다.

이후 노이만은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수학자 울람(Stanislaw Ulam, 1909~1984)과 함께 생명을 장기판과 같은 격자 위 공간에 있는 코드로 보고, 몇 가지 단순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장치인 ‘2차원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on)’를 고안했다. 이를 시작으로 컴퓨터로 구현된 다양한 구조들이 오늘날까지 인공생명체로 불리게 되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컴퓨터 바이러스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실제 생명체처럼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 재생산하며 신진대사도 한다.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 컴퓨터를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진화하기까지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은 인공생명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질료가 인공적일 뿐 행동 양태는 창발적이라는 점에서 실제 생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노이만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자신을 스스로 복제하는 로봇이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이런 로봇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 이런 기계의 탄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무한 증식하는 나노 로봇, 영생하는 아바타
드렉슬러(Eric Drexler, 1955~)는 나노미터 크기의 로봇, 일명 ‘나노 로봇’의 출현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 로봇은 자기 복제가 가능해 여러가지 물건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 그의 주장은 2005년 코넬대학 립슨(Hod Lipson, 1967~) 교수와 연구팀이 스스로 같은 모양을 만들어 내는 로봇을 실현하면서 더욱 힘이 실렸다. 이 로봇은 일명 ‘분자큐브’로, 한 변 길이가 10㎝정도 되는 정육면체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로봇은 몸에 부착된 자석으로 주변 부품을 결합해 2~3분 만에 자신과 같은 모양으로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 낸다. 전기 접촉을 통해 옆의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만약 블록 하나가 고장 나면 스스로 이 블록을 떨어뜨려 다른 블록으로 교체한다.

재미난 생각이지만 나노 로봇의 미래에는 섬뜩한 '그레이 구(Grey goo) 시나리오'가 숨어 있다. 드렉슬러에 의하면 나노 로봇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해 인간의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오면, 지구 전체가 나노 로봇으로 뒤덮여 인류는 멸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공생명 연구는 구글의 인공신경망을 낳았고, 또 하나의 지구, 메타버스까지 탄생시켰다. 생물학이 단지 한 형태의 생명만을 연구하는 데 비해 인공 생명은 연구자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한 그 한계가 없다. 생물학적 생명은 유전적으로 획득되고 학습된 특성들을 생략할 수 없지만, 인공생명은 생략이 가능하다. 인공생명 연구자는 돌연변이율, 교차율, 그리고 유전자 합성 스키마를 변화시킬 수 있고 생명체의 적합한 기준, 환경, 상호작용의 규칙을 수정할 수 있다.

인공생명은 생명의 본질을 해명함으로써 생명의 어떠한 측면이 보편적이고 어떠한 측면이 특수한 것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인공생명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인 생명이 왜 특정 길을 따르는지에 대한 통찰력도 얻을 수 있다.

AI가 신체를 확보, 차원 높은 인공생명체로 거듭나게 되면, AI는 인간을 포함, 모든 생명 유기체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생명이란 것은 물리공간과 정보공간 양쪽에 걸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AI로봇에게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신체확보 여부는 선택적 과제이다. AI는 네트워크를 통해 빙의(Agent Migration)하는 방식으로 연결된 기존의 하드웨어들을 활용만 해도 신체를 가진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 보자. 인간의 뇌에 담긴 정보를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뇌를 다운로드 해서 네트워크를 통해 인공생명체에 빙의 한다면, 과연 인간은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우리는 메타버스에 있는 자신의 아바타에 빙의하여 평행 세계를 살고 있다. 만일 인간의 사후에도 메타버스에 살아있는 아바타가 생명활동을 지속하는 프로그램이 된다면, 영생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사진=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제공]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1개의 댓글
0 / 300
  • AI 영생이라 영혼이 옮겨질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영혼을 다루는 종교의 관점에서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공감/비공감
    공감:0
    비공감: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