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업의 역설] 한 달 새 45만원 비싸진 냉장고…'일렉플레이션' 시작됐다

2022-07-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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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폭증했던 펜트업(보복 소비) 수요가 잦아들고,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최신형 전자제품에 등을 돌리고 있다. 쌓여가는 재고를 두고 볼 수 없는 주요 전자제품 제조사들은 판매가를 차츰 올리는 동시에 판촉 이벤트를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비용은 대폭 늘어나는 ‘일렉 플레이션(electric inflation)’이 본격화하고 있다.

◆폭증했던 수요 멈추고 경기침체 본격화
 
30일 아주경제가 주요 가전제품의 온라인 판매가격을 분석한 결과, 국내 주요 업체의 최신형 냉장고·TV·세탁기·건조기 등 가전제품의 판매가격이 6월 들어 대폭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삼성전자의 대표 인기 냉장고인 비스포크 4도어 제품은 행사가 기준으로 지난 5월 150만원대에 판매됐으나 이달 들어 190만원대로 껑충 뛰었다. 한 달 사이 무려 45만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UHD 4K TV도 지난달에는 90만원 후반대에 팔렸으나 이달 들어 140만원으로, 40만원 정도 올랐다. 장마철로 수요가 늘고 있는 AI 건조기의 경우 지난달 판매가는 210만원대였으나 6월 들어 240만원대로 올랐다. 이런 가격 인상은 하루가 멀다고 오르고 있는 원자재값과 전기료 등으로 제품 원가 자체가 상승하고 있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삼성전자 모델이 서울 논현동 삼성전자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알렉스 프로바 채널이 적용된 비스포크 냉장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전자제품 업체, 판촉·할인 이벤트 줄여...소비자 부담↑

하지만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제조업체들도 제품 원가 상승분을 반영해 동일 제품에 대한 출고가를 당장 인상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이커머스나 양판점 등 중간 유통사에 제공하는 마케팅, 프로모션 비용을 줄여 수익성 방어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통사들이 줄어든 마케팅, 프로모션 비용을 반영해 예전처럼 가전제품 판매 촉진을 위한 대규모 할인이나 기획 판매를 줄이게 된다. 결국 같은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내야 하는 돈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출고가 인상은 힘든 탓에 기존에 제조사와 유통사가 각각 부담했던 마케팅, 프로모션 비용을 줄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실제 판매가는 상승하게 되고 부득이하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소비자 부담이 커지면서 내수 시장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른 가전 시장의 뚜렷한 둔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가전 내수 시장은 지난 2020~2021년 내수 호황에 따른 역기저 효과와 금리 인상, 제품 가격 상승의 부정적 요인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8% 감소할 전망이다. 업계는 전체 국내 가전 생산 역시 원자재·물류비 증가와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 비중 확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치솟는 원가에 실적 전망 어두워...해외 수출도 여의찮아 
 

가전 업체들의 실적 전망도 어둡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올 2분기 LG전자가 매출 19조4354억원, 영업이익 8751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 8781억원보다 0.3% 감소한 수치다. 신한금융투자는 4월 14조9180억원으로 분석한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최근 14조395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극복방안은 프리미엄 제품군의 수출 확대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 및 글로벌 공급 경쟁력 강화를 통해 관련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LG전자 역시 프리미엄 제품군의 확대를 통해 수익성 방어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조가 확대되면서 가전 수출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유럽 등 일부 지역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전 분기 대비 TV·가전의 매출이 10% 이상 줄어든 상태다.

기업들 사이에 펜트업(억눌린 수요가 폭발하는 현상) 호시절은 끝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간 코로나19로 좋은 성적표를 냈지만 최근 고물가 등으로 인해 상황이 급격히 반전되며 높았던 수요가 오히려 기업 상황 악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경기 침체 등에 따른 기업 경영 환경이 본격적으로 나빠질 전망이다. 전기료 등 각종 공공요금도 줄이어 인상이 예정돼 생산비용은 오르고, 자연스럽게 제품 가격도 상승하는 등 시장에 악순환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 기업의 하반기 적신호가 예상된다.

◆‘호시절’ 펜트업 수요 끝, 가전·전자업계 재고 쌓여가

30일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기업은 이미 재고 관리에 들어갔다. 그간 펜트업에 따른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확보해뒀던 제품들이 수요 하강 사이클 진입으로 점차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미리 재고 규모를 확대했는데 제품 출하가 줄면서 재고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기업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금융정보 서비스 업체 퀵팩트세트는 2349개 상장 제조업체의 지난 3월 기준 재고가 1조8696억 달러(약 2415조원)에 달한다며 전체 재고액과 증가액은 최근 10년래 최대치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재고가 392억 달러(약 50조7000억원)로 달러화 기준 주요 제조업체 중 가장 많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재고가 3개월간 13%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둔화하고 있으니 재고가 당연히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라며 “판매가 둔화하고 창고에 물건이 남으면 기업도 자연스럽게 생산을 줄이게 된다. 생산을 줄이면 공급받던 부품 보유량도 감소하는 건 당연하다.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기름값, 전기료, 상수도료까지 줄줄이 인상···하반기 도미노 인상 불가피

문제는 올 하반기다. 하반기에 공공요금의 전반적인 인상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류비 부담도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특히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제조업 등 분야에서 생산비용 증가 폭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당장 이달부터는 전기요금이 오른다. 한국전력은 7~9월분 전기요금에 적용될 연동제 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5원으로 확정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기요금을 포함해 이미 가스·수도요금은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9.6% 상승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고유가 기조도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2144.11원, 2166.77원을 기록해 당분간 상승세를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다. 생산비용이 증가하면서 수요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하반기에 줄줄이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 기업에 상품 재고가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소비를 안 하면 생산도 줄어들게 돼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 등 가격을 올리는 데 대해 기업들이 어떤 타당성을 좀 보여줘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설득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비자는 결국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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