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송금률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투명성과 효율성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국내 공익법인 재무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20년엔 세부항목 평가에서도 모두 만점을 받았는데, 이런 사례는 전체 국내 공익법인 9648곳 중 4곳에 불과하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또 다른 강점은 단체가 모금한 후원액의 구성 비율과 후원을 하려는 외부 기관이 거쳐야 하는 엄격한 심사 기준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전체 후원금에서 약 97%는 일반인 기부다. 나머지 3%가량은 기업 기부인데, 이조차도 유니세프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철통 심사’ 기준을 충족해야 기부 기회가 주어진다. 투명성이라는 후원금 운용 원칙이 기부금을 모집하는 과정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향한 기부가 기업에게 일종의 ‘훈장’이 되다 보니 기업에도 기부는 ‘윈윈(Win-win)’ 전략이다. 특히 평생을 경제학자로 살아온 정갑영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은 최근 재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경영 핵심 지표로 꼽힌다는 점에 주목했다. ESG의 실행, 그중에서도 ‘사회’를 위해 기업이 기여한다는 물증 가운데 하나로 기부를 내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소비자가 기업에 보내는 믿음으로 이어져 기업도 이익을 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아래는 정 회장과의 일문일답.
-수많은 기부단체 가운데 유니세프한국위원회만이 갖는 강점이나 특징은.
투명성과 효율성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후원금 100원 중 85원을 유니세프 본부로 보낸다. 전 세계 33개 유니세프국가위원회 중 가장 높은 송금률이다. 객관적 지표로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국내 공익법인 재무 종합평가에서 재무 안정성·효율성, 투명성·책무성 종합병가에서 만점인 ‘별 3개’와 ‘크라운 인증’을 지난 2019~2020년 2년 연속 획득했다. 특히 지난 2020년엔 20개 세부항목 평가에서도 모두 만점을 받았다. 이를 다 충족한 법인은 총 9648곳 중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포함해 4곳(0.04%)에 불과하다.
-개인, 기업, 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기부단체에 후원을 한다. 기금액 구성은 어떻게 돼 있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전체 후원금 중 97%가 일반인 후원이고 나머지 3%만 기업 후원이다. 정부 후원은 전혀 받지 않는다. 개인 후원자만 45만여명이고,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자체 후원 계좌만 67만여개다. 그런데 기금액 규모는 전 세계 유니세프국가위원회 중 한국이 5위다. 미국, 독일, 영국 등 기부가 활성화한 국가들 바로 아래 단계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우리 시민들의 기부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 있다.
-기업 기부는 전체 후원금의 3%에 머문다. 이유가 있나.
기업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기부를 하려면 일정한 심사 기준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 심사 기준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 통과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3%라는 수치는 그 결과다. 저희는 이 절차를 ‘평판 심사(Reputation Screening Program)’라고 부른다. 평판 심사 요소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드리면, 기업의 사업 내용이 있다. 기업이 취급하는 사업이 어린이 인권과 역행하면 평판 심사를 통과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내전·전쟁 등에 무기를 공급하는 군수업계부터 어린이들에게는 금지된 주류·담배업계까지 포괄해 그 범위도 넓다.
-최근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평판 심사를 통과한 기업을 소개해달라.
‘카카오’다. 지난 3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코인으로 43억원을 기부했다.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기업 기부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단순히 기금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기업의 전통적 이윤 극대화 모델이 변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제안드리는 것이다. 과거처럼 이윤만 추구하면 기업은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논의된 게 ESG 경영이다. 환경과 사회 등에 대한 기여가 기업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기업의 건전한 생존을 위해서는 환경과 사회를 도외시할 수 없으며, 기업은 공동체 문화를 준수하는 방식으로 ESG경영 실현이 가능하다. 기부는 그 방법 가운데 하나이자 지표가 될 수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연령대는.
현재까진 40대 기부 비율이 가장 높다. 40대가 비교적 재산을 축적한 세대인 데다, 자녀를 키우는 세대이다 보니 어린이 인권에 관심이 많은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최근 주목할 점은, 2030세대 기부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공정’과 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퍼지다보니 젊은이들도 기부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향후 40대뿐 아니라 2030세대도 기부의 중심축이 되리라 보고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부사업은.
‘아동친화사회 만들기’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자체, 학교, 기업, 병원 등 아동이 생활하거나 아동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사회를 ‘아동친화적 환경’으로 만들자는 캠페인이다. 예컨대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곧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아동권리옹호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올해 들어 더 많은 협력 기관들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도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모금 현황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지난 2월 28일부터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돕기 위해 긴급구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결과 모금 2주 만에 개인과 기업들의 큰 관심으로 500만 달러(5월 16일 환율 기준 약 64억3050만원)를 우크라이나에 긴급 지원했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긴급구호 캡페인에는 지난 11일 기준 1만1905건 후원이 이뤄졌다. 500만원 이상 고액을 후원한 후원자님들도 여럿 계셨다. 분쟁 한복판에 놓인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짧은 기간에 큰 기금이 모일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가 침체되며 각종 기부단체가 모금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최근 모금 추이는 어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후원자분들의 따뜻한 손길은 중단되지 않았다. 지난해 총 모금액은 1년 전인 지난 2020년에 비해 약 10% 정도 많다. 전체 기금액 가운데 개인 후원자님들의 기부액 비율도 지난 몇 년과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부가 사회적 신뢰와 배려의 확산에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기부는 타인에 대한 신뢰와 배려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이게 사회 전방위에 퍼지면 신뢰와 배려가 깃든 문화와 제도가 만들어진다. 내가 어디 있든, 돈이 많든 적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개개인은 바르게 자랄 수 있다. 또 기부는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로 알려졌지만, 상대방에게 건네는 신뢰와 배려에서 자신도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행위다. 기부를 통해 얻는 만족감을 많은 분들이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후원 중인 분이나, 후원을 계획 중인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유니세프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을 세운 특별함을 갖고 있다. 유니세프 역사상 도움을 받다가 주는 나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이자, 설립 20년 만에 미국, 일본, 독일, 영국과 함께 세계 주요 5대 모금국이 됐다는 점이다. 저희는 앞으로도 국내 아동 권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정부와 시민사회 등과 연대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전개할 것을 약속드린다. 후원자님들께서 유니세프와 함께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정갑영 회장 약력
▲연세대학교 경제학 학사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제학 석사 ▲코넬대학교 경제학 박사 ▲게이오대학교 경제학 박사(명예)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현) ▲대한항공 이사회 의장(현) ▲Global Economic Review(영국 Routledge), Editor(현) ▲17대 연세대학교 총장 (2012~2016)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교무처장 ▲감사원 감사혁신위원회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거시금융분과 분과위원장 ▲삼성경제연구소 석좌 연구위원 ▲동북아 경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