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기기 게임이 왜 15세 이용가로 유통됐을까?

2022-01-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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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된 옷 벗기기 게임. [사진=게임 화면 갈무리]

최근 구글 플레이에서 다소 선정적인 게임이 '15세 이용가'로 유통되면서 논란이 됐다. 해당 게임은 싱가포르 개발사 팔콘 글로벌이 출시한 것으로, 간단한 게임을 통해 여성의 옷을 벗기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게임에서 끝까지 승리하면 여성 캐릭터는 속옷만 남는다. 게임은 출시 직후 인기를 끌어 누적 다운로드 수는 100만회를 돌파했다. 청소년도 이용할 수 있는 게임인 만큼, 게임 목적과 보상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사실 이 같은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한 카드 수집 게임에서는 특정 코드를 입력하면 숨겨진 일러스트가 등장하는 기능을 넣기도 했으며, 지난 2020년에 출시된 특정 게임은 소아성애를 연상시킨다는 논란 때문에 청소년 이용 불가로 재분류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게임이 어떻게 15세 이용가로 유통될 수 있었을까?
 
자율규제 허점 악용...철저한 모니터링으로 자율규제 의미 살려야
우선 국내에서 유통되는 게임물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에 따라 출시 전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이는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와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민간심의기관인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는 사행성과 청소년 이용 불가를 제외한 기타 게임물을 심의하며, 공공기관인 게임위는 모든 분류를 맡는다.

그런데 이들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자율적인 유통이 가능한 사례도 있다. 게임 분야에서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이 도입되면서 전 세계 게임이 국내 시장에 빠르게 유입됐다. 게다가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 생태계가 확대되면서 신규 게임 출시 주기는 더 짧아졌다.

이 과정에서 해외 사행성·선정성 게임이 무분별하게 국내에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는 한편, 플랫폼 중심의 게임 환경 변화에 기존 규제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대두했다. 이에 따라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지정하고 자율규제를 도입하도록 게임법을 개정했다.

그간 게임위와 개별 사업자가 협약 형태로 진행해온 심의 사업자 지정을 2017년 1월 1일부터는 게임위가 직접 심사해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자율규제를 맡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의 등장이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과 사행성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에 대해 자율적으로 등급을 매겨 유통할 수 있다. 게임위는 출시 이후 부적절한 게임에 대해 등급분류 취소나 변경 등 사후 관리를 맡는다.

국내에서는 구글, 애플, 원스토어, 카카오게임즈, 삼성전자, 소니(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한국닌텐도, 에픽게임즈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오큘러스VR코리아(메타) 등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돼 있다. 쉽게 말해 구글 플레이를 통해 국내에 출시되는 게임은 구글이 자체적으로 등급을 지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개발사의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해외 우수 콘텐츠가 국내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게임은 자율규제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다. 게임위에 따르면 구글은 설문 시스템을 통해 게임물 등급을 자체 분류하고 있다. 개발사가 여기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양식을 제출하면 된다. 이는 일종의 표준 양식에 해당하며, 하루에도 수만 건씩 발생하는 심사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다.

다만 게임위는 개발사가 이 양식을 허위로 작성하면 일시적으로 시장에 부적절한 게임이 유통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모든 게임을 하나씩 검수하기 어렵고, 개발사 측에서 고의적으로 설문 내용 중 일부를 누락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후규제를 담당하는 게임위에서는 모니터링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사업자 측에 공문을 보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사례는 권고 이전에 구글에서 자체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개별 앱과 게임에 대한 조처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게임학회, 사업자와 관리 주체에 책임감 필요하다고 지적
한국게임학회는 이번 논란에 대해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의 무책임과 관리주체인 게임위의 관료주의를 비판했다.

위정현 학회장은 "게임 선정성 논란이 재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낀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이번 사례와 같은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다면 게임은 다시 국민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며 "특히 구글의 심의 기준 정보에 대한 공개 거부와 게임위의 무능함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해당 기업에 대한 제재와 입법 활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위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례가 게임과 메타버스 등 신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며, 과거 논의된 '게임 중독 질병코드' 등 규제로 인해 게임산업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번 사례로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게임학회는 해당 게임을 차단하지 않고, 기존에 내려받은 이용자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처리한 일을 들며 자체심의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리 주체인 게임위에는 예산과 인력 한계를 이유로 등급분류를 위탁한 것에 대해 자율규제 운영 능력과 사후관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가령 게임 내 이벤트의 경우에도 신고가 필요하지만, 개발사는 신고 후 즉시 이벤트를 시행하는 반면 심의는 이보다 한발 늦게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적정한 수준의 감시와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업자 역시 관리 필요성을 등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무부처인 게임위에 대해서는 국내 게임산업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각종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구조 개혁과 조직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율규제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시도를 촉진해 게임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쏟아지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한 제도다. 불필요한 규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지만, 최소한의 규제가 없다면 이번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 때문에 사업자와 관리주체의 철저한 모니터링과 관리로 자율규제의 의미를 강화할 필요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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