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평화의 소녀상 앞은 어쩌다 전쟁터가 됐나

2021-11-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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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사이에 두고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사이에 갈등 격화

원인은 '집회 장소 다툼'…보수단체가 소녀상 앞 선점하며 양측 충돌

연합뉴스 사옥 앞까지 보수단체가 선점하며 수요집회 상황 '악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보수단체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홍승완 기자]

이달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서울시내 집회 시위 인원 제한이 없어진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마찰이 극에 달하고 있다.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수요집회가 열리던 소녀상 앞자리를 두고 자리 쟁탈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수요집회 전날 새벽부터 밤샘 대치를 하며 소녀상을 지키느냐, 빼앗느냐의 힘겨운 전투를 이어오고 있다. 진보 성향 대학생 단체인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반일행동)은 보수단체를 친일파로 규정해 물러가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보수단체인 자유연대는 반일행동 측이 오히려 불법 점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요일인 10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은 경찰들과 학생, 보수단체 등이 뒤섞여 고성이 오갔다. 위안부를 사기라고 주장하는 보수단체와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를 촉구하는 반일행동 측이 집회 장소인 소녀상을 두고 충돌을 빚으면서다. 전날엔 자유연대가 소녀상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반일행동 회원들과 충돌하면서 평화로라고 불리는 소녀상 인근은 한때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소녀상 근처 회사에 근무 중인 구재연씨(31)는 "이달 들어 수요일 전후로 소녀상 근처가 더 소란스러워진 느낌이다. 집회엔 확성기까지 등장해 창문을 닫지 않으면 업무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 앞 집회 사수 위해 새벽부터 충돌. [사진=연합뉴스]

최근 소녀상을 둘러싼 충돌이 잦아진 이유는 보수단체인 자유연대와 진보단체인 반일행동 간의 자리싸움 때문이다. 먼저 소녀상 앞은 1992년 1월부터 29년 동안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수요집회를 해온 곳이다. 다시 말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하지만 작년부터 자유연대가 집회·시위 신고 장소로 소녀상 앞을 선점하면서 정의연이 지켜온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앞서 자유연대는 작년 6월 말부터 소녀상 앞자리에 집회 신고를 했고, 이에 밀린 정의연은 작년 6월 24일과 7월 1일 자 수요시위(제1445차·1446차)를 소녀상이 아닌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진행해야 했다. 28년간 지켜온 자리를 자유연대에 내준 셈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집시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옥외집회나 시위를 하려는 주최 측은 집회 시작 720시간(30일) 전부터 48시간(2일) 전까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다른 단체와 시간과 장소가 겹칠 땐 먼저 접수한 곳이 우선이다. 그보다 나중에 접수된 집회나 시위는 불허하도록 되어 있다.

이날도 자유연대가 집회 장소로 소녀상 앞을 선점하면서 반일행동 측과 마찰을 빚었다. 오는 17일과 24일, 12월 1일도 자유연대가 소녀상 앞을 집회 장소로 선점해 정의연은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자유연대는 정의연 관련 후원금 횡령·회계 의혹이 불거진 작년 5월 말부터 정의연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해 소녀상 앞자리를 선점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집회 신고 접수처에 24시간 불침번을 서면서 자정이 되면 곧장 집회 신고를 하는 식이다.
 

소녀상 앞에서 좌우로 나뉜 집회 [사진=연합뉴스]

이날 집회에서 소녀상 철거를 주장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은 "소녀상과 연합뉴스 앞까지 집회 장소로 선점한 이유는 정의연이 더이상 수요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집회 장소 선점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녀상을 사이에 두고 보수단체와 대치 중인 정의연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의연 측은 연합뉴스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향한 모욕과 역사 부정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보수단체 방해에 굴하지 않고, 장소를 옮기더라도 수요시위 정신을 현장 집회로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현재 정의연은 소녀상 대신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수요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보수단체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 12월 1일과 8일 연합뉴스 사옥 앞을 집회장소로 선점하면서 당분간 수요집회가 몸살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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