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파산설' 헝다 "살릴까 말까"…中지도부 속내는

2021-09-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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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채권 3개 이자 지급해야···'디폴트' 우려↑

中 경제성장률 최대 4.1%P 갉아먹을 수도

은행·주택구매자·중소 협력업체 '직격탄'

뼈를 깎는 파산·구조조정 노력 필요할듯

“헝다는 현재 전례 없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른 시일 내 반드시 어둠에서 벗어날 것이다. 모든 작업이 정상 재개될 것이며, 완공한 주택을 무사히 인도함으로써 주택 구매자, 투자자, 협력사, 금융기관에 책임 있는 답안을 내놓겠다.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할 것이다.”

최근 유동성 위기 속에 파산설이 나도는 중국 부동산재벌 헝다그룹 쉬자인 회장이 지난 21일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 내용이다. 헝다 리스크 문제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동안 중국 부동산재벌 3위 헝다는 '대마불사'로 여겨졌다. 규모가 너무 커서 무너질 수 없다는 게 시장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정부는 대형 국유기업의 파산도 용인하면서 대마불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중국 지도부가 헝다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형국이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달 말 채권 3개 이자 지급해야···'디폴트' 우려↑
헝다로선 당장 이달 말이 고비다. 역내외에서 발행한 채권 3개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헝다는 23일(현지시각) 중국 역내 위안화 채권에 대한 2억3200만 위안(약 424억원) 이자, 그리고 역외 달러채에 대한 8350만 달러(약 988억원)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어 29일에도 역외 달러채에 대한 4750만 달러 이자 지급이 예정돼 있다.

향후 30거래일 이내 이자를 내지 못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처리된다. 22일 현재 헝다는 이중 역내 위안화 채권 1개에 대한 이자만 제때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만약 중국 정부가 이대로 한달 후 헝다의 디폴트를 용인한다면 헝다의 나머지 채권에 대한 불안감이 촉발될 수 있는 만큼,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헝다가 올해 말까지 역내외 채권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이자금만 우리 돈으로 8000억원이다. 헝다그룹 파산설로 최근 미국, 유럽, 홍콩 등 주요 증시가 출렁이는 이유다. 

헝다란 기업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중국 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 마크 윌리엄스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NBC를 통해 “헝다의 붕괴는 중국 금융 시스템이 수년간 직면한 가장 큰 시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20일 보고서에서 헝다의 디폴트 위기는 전 세계 투자자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라며, 헝다발 위기가 최악의 경우 중국 경제성장률을 최대 4.1%포인트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헝다그룹 주요 채권 이자지급 예정 현황 [자료=로이터]

 
中 경제성장률 최대 4.1%P 갉아먹을 수도
이는 헝다를 ‘대마불사’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헝다그룹은 부동산이 본업이지만 전기차, 테마파크, 스포츠, 금융보험 등 사업으로 확장하며 총 자산만 2조3000억 위안(약 420조원)에 달한다. 부채액은 공식적으론 지난 6월 말 기준 5718억 위안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미지급금을 포함한 총부채는 소폭 증가한 1조9700억 위안에 달한다. 이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에 상당하는 수준이다.

중국 280개 이상의 도시에서 1300개 이상의 아파트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며, 관리하는 부동산 총면적만 3억㎡다. 미국 뉴욕 맨해튼 면적의 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헝다그룹이 먹여살리는 직원 수만 20만명으로, 간접적으로 창출하는 일자리 수까지 합치면 매년 38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헝다그룹이 중국 본토와 홍콩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다. 헝다그룹 계열사 주식과 채권은 아시아 각종 벤치마크 지수에 포함됐으며, 다수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있다. DBS은행에 따르면 헝다는 중국 부동산기업이 발행한 하이일드(고수익 고위험) 달러채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주택구매자·중소 협력업체 '직격탄'

헝다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택구매자, 투자자, 은행, 중소 협력업체가 입게 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헝다 부채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은 은행 128곳, 신탁업체 등 비은행 금융기관 121곳이다. 이 중 중국 국내 금융기관이 171곳으로, 특히 민생은행 대출채권이 293억 위안으로 가장 많다. 이외에 농업은행(242억 위안), 저상은행(107억 위안), 광대은행(100억 위안), 공상은행(94억 위안), 중신은행(94억 위안) 등이다. JP모건은 "만약 헝다에 빌려준 대출이 부실채권으로 전락하면 민생은행의 올해 전체 순익의 최대 절반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헝다 분양주택 구매자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헝다는 280여개 도시에서 140만개 분양주택을 건설 중이다. 주택 가격으로 따지면 1조3000억 위안어치다. 만약 헝다가 도산해 아파트 건설이 중단되면 주택 구매자들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사회 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헝다의 협력사들도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다. 상하이증시 상장사인 페인트업체 싼커수(三棵樹)가 대표적이다. 지난 8월 말까지 헝다그룹으로부터 받아야 할 미수금만 약 9억 위안에 달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오면서 이 회사 주가는 폭락했다. 중국엔 현재 싼커수와 같은 헝다 협력사가 수두룩하다.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현재 헝다의 페인트, 건설자재, 인테리어, 가구업체 등 협력사에 대한 미지급금만 6670억 위안에 달한다. 게다가 향후 1년간 헝다가 이들 협력업체에 결제해야 할 지급금도 2400억 위안에 달한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8월 보고서에서 언급했다.
 

유동성 위기 속 헝다그룹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85% 넘게 폭락하며 곤두박질쳤다. [홍콩거래소]

 
헝다 '도덕적 해이' 도마 위··· 구제금융 힘들듯 

중국 지도부가 금융시장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헝다가 무너지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중국 지도부가 헝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헝다라는 기업에서 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게 됐는지부터 살펴보자.

중국 3대 부동산 재벌인 헝다는 수년간 중국 부동산 경기 호황 속에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거액의 채권을 발행하고 은행에서 막대한 돈도 빌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진 부동산 기업이라는 말도 있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 부동산 시장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돈줄에 문제가 생기며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졌다. 

예전처럼 은행은 돈을 호락호락 빌려주지 않았고, 부동산 규제 강화에 채권 발행도 쉽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 아파트도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았다. 결국 수중의 현금으로는 빚을 갚을 능력이 안돼 디폴트 리스크가 고조된 것이다. 

그래도 헝다는 우량자산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매각해 현금화만 할 수 있다면 부채는 충분히 상환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진단이다.  

그런데 당장 시간이 없다. 이미 헝다발 리스크가 중국 금융시장과 사회에 불안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헝다의 재무 건전성 우려가 커지며 은행은 대출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신용등급이 강등돼 채권 값은 폭락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회사 본사 앞에 몰려들어 돈을 갚으라고 시위까지 벌였다.

게다가 최근 중국 당국의 규제 우려 속에서 헝다그룹 자산을 매입하려는 투자자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현재 헝다가 매물로 내놓은 헝다자동차, 헝다물업, 홍콩 빌딩 등 매각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헝다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헝다가 판매한 금융상품의 지급불능 사태가 불거지자 헝다 고위급 경영진이 서둘러 환매를 통해 투자금을 미리 빼돌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경영진이 제 잇속만 챙겼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뼈를 깎는 파산·구조조정 노력 필요할듯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로선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헝다를 위기에서 구제해줄 것이란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중국 정부로선 헝다 리스크가 중국 금융 시스템 전체로 번지는 걸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둬웨이망은 "중국 정부는 이미 헝다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며, 국유은행들이 이미 헝다발 리스크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완료해 헝다그룹 사업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고, 헝다 그룹 자산을 압류하기 시작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시장은 중국 정부가 헝다발 리스크를 예의주시하면서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해 부도 처리는 막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최근 중국 정부가 부동산 규제 강화와 공동부유를 외치는 가운데, 헝다에 돈을 대주거나 국유기업을 통해 인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중국 정부의 비공식 '입'으로 통하는 후시진 중국 관영 환구시보 편집장은 지난 16일 SNS를 통해 "현재 헝다가 직면한 위기는 무모한 사업 확장, 방만한 금융 조작, 높은 부채율에 따른 경고를 알리는 것"이라며 "일단 문제가 발생한 기업은 '대마불사'의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 시장의 순리대로 자신의 역량에 기반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로 미뤄볼 때 유력한 시나리오는 헝다 문제를 시장에 맡겨 구조조정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을 통해 자산을 매각하는 등 자체적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 헝다는 최근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훌리한 로키를 재무 고문으로 초빙했다. 훌리한 로키는 미국계 투자은행으로, 미국 리먼 브러더스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의 구조조정 작업을 지휘했었다. 헝다그룹은 훌리한 로키와 함께 회사 자산구조, 유동성 상황 등을 평가해 이른 시일 내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해법을 마련하고 현재 부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헝다발 리스크가 고조되면 정부 주도로 파산·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중국 정부는 헝다 주택 구매자와 중소 협력업체 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며, 은행과 채권자(특히 해외 채권자)는 후순위로 밀려나 어느 정도 희생을 치를 것이란 전망이다.

홍콩 소재 헝다그룹 빌딩.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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