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중국 홍색규제, 설자리 좁아진 한국

2021-09-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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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교수, HK+국가전략사업단


중국 정부가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와 성장(成長)이라는 이중 목표 달성을 앞세워 시장과 기업, 그리고 사회문화 분야를 망라한 일련의 규제 조치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의 이념과 목표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홍색(紅色) 규제로 불리는 이 정책들은 빅 테크 기업 제재와 게임 규제, 과외 금지 등 사교육 시장 제한에서 연예계 정화로 이어지면서 사회기강을 바로잡는다는 정풍(整風)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절대 빈곤을 해결하고 중산층 사회 진입을 알리는 소강(小康)사회 달성을 선언한 시진핑 지도부는 이제 함께 잘사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의미의 공동부유를 중국식 현대화의 특징으로 강조한다. 이론적으로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추진과정에서 일부 지역과 계층이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선부론(先富論)에서 다시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공동의 부’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건강한 중국’, ‘아름다운 중국’, ‘환경 중국’이라는 다소 감성적인 단어들을 내세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 세계 최강의 국가를 건설하는 ‘또 하나의 백년’을 확고한 ‘당의 주도’로 완성하겠다는 선언이다.

근·현대 이래 중국의 사회혁명이 기본적으로 공평사회 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공산당은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공평을 추구하겠다면서 다른 방식의 공평사회 추구는 인정하지 않는다. G2로까지 언급되는 세계적 국가로 성장했지만 사회주의 중국 건설이나 사회주의 발전 방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규제 조치들은 그동안 이념적으로 흐트러졌다고 판단된 ‘중국식 사회주의’로의 회귀를 위한 현 지도부의 시도이기도 하다. 당연히 공산당 정권 유지와 체제 안정을 위한 사회 안정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으며, 내년 제20차 공산당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체제의 연장에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로도 읽힐 만하다.
물론 중국 정부의 규제 조치들은 대외적으로는 지나친 정치적 압박과 규제, 이념으로의 회귀 등 우려도 낳고 있지만 국내적인 사회 안정 차원에서는 일정한 지지도 받는 양면성를 띠고 있다. 중국의 기술 굴기와 국제화를 선도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해서는 당이 시장보다 우위라는 메시지와 함께 당과 정부의 구상대로 기업이 시장에 맞추라는 의지를 전달했다. 특히 IT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노동자 처우 개선과 지나친 독점에 대한 우려를 환기시키면서 민심을 공략하는 효과도 노리는 이중성도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공산당과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거대 공룡의 존재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정책 의지의 표현이다.

사교육 금지는 과도한 경쟁으로 공교육이 침해받고 있으며, 부의 세습이 학문적 불평등으로 이어져 사회정의를 해치는 근원이라는 이유로 단행되었다. 과중한 사교육 부담이 출산 회피로 이어지고 인구절벽에 봉착하게 해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발전 동력을 제약한다는 우려도 담겨 있다. 중국 정부의 말대로 교육 분야는 특수 분야라고는 하지만 정책에 의해 어떤 산업 자체가 황폐화되거나 축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읽힌다. 사교육 규제나 과도한 숙제 금지, 게임 규제 등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중국식 정책 리스크가 차이나 리스크의 본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중문화 통제에도 칼을 빼들었다. 당 선전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방송 언론매체를 감독하는 광전총국(廣電總局)은 정치적 소양과 도덕적 품행, 사회적 평가 등을 기준으로 방송과 인터넷 시청 플랫폼 출연자를 선정하라고 통보했다. 아이돌이나 스타 연예인 관련 뉴스들이 위화감을 일으키고 그것이 결국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잘못된 서구식 팬덤 문화가 고착돼 정상적인 사고가 제약받는다는 이유다. 일부 부유한 스타들의 탈세와 지나친 출연료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서민들에게는 일정한 카타르시스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문화계에 대한 일련의 조치들은 1942년 모든 문예활동은 사회주의와 인민 이 두 가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위(二爲) 방침을 내세운 연안(延安)정풍을 상기시킨다. 최고 사정기관인 공산당 기율위원회가 중국 유수의 대학 모두에 공산당과 시진핑(習近平)의 사상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적으로는 지나친 양극화에 대한 처리를 고민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일단 국내적 안정을 위한 통제 정책을 택했다. 중국식 사회통제는 서방의 제도와 가치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소위 ‘자본’은 공산당식 공평과 공동부유를 추구하는 ‘도구’이며 자본에 지배받는 공산당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편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방식을 고집하므로 결코 세계적 리더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식이라면서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은 통제 강화와 중국적 발전방식의 추구를 통한 정면 돌파에 나섰다. 이 역시 철저히 중국의 선택이며 결과 또한 중국의 몫이다. 다만 한국이 중국과 공유할 가치가 없다면 앞으로도 괴로울 수밖에 없음이 걱정이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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