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전일본학생유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태극기를 달고 한국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던 안창림은 그로부터 8년 후 태극마크를 달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했던 그는 이제 나라를 대표하는 어엿한 국가대표가 돼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방송출연을 통해 유명해지는 게 아닌, 유도선수로서 유명해지고 이름을 알리고 싶은 안창림 선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Q. 이번 올림픽 어떠셨나요?
Q. 가장 익숙한 무대인 무도관에서 한국 선수로써 대결을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A. 큰 감흥이나 의미를 두고 시합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훈련했던 걸 쏟아 붓는 자리이기 때문에 경기장이 어땠다던지 일본해서 어땠다던지 이런 건 신경 안 쓰고 경기에만 신경을 썼어요.
Q. 올림픽 이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A. 오자마자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요. 가끔씩 촬영 같은 것들이 잡혀서 가끔씩 행사적인 일들도 했지만 이제 9월부터는 운동에만 집중하고 올인 하는 생활을 다시 하려고요.
Q. 올림픽 이후 일상에 있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뭔가요?
A. 밖에 돌아다니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고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그때마다 해주시는데 그런 면에서 바뀐 것 같아요.
Q.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에 예능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요. 안창림 선수도 그럴 계획이 있으세요?
A. 저는 그럴 계획이 전혀 없어요. 사실은 이번에도 올림픽 이후에 예능프로에 하나도 안 나가려고 했어요. 근데 아무래도 회사와 관계가 있는 계열사에서 부탁을 해서 제가 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몇 개는 응했던 거고요. 그래서 사실 이제는 예능에는 안 나가려고 하고 욕심도 없어요.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예능에 진출할 생각은 없어요.
Q. 안창림 선수는 유명해지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은 뭔가요?
A. 유도선수로서는 기록이 남는 게 중요하죠, 사람들이 기억하고 이슈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고요. 평생 제가 남는 기록과 그 과정이 인생 전체에 성장이 되도록 하는 게 제 목적이에요.
Q. 친해진 다른 종목선수들이 있나요?
A. 아니요. 없어요. 프로그램을 하다가 구본길 형이 저를 잘 챙겨줘서 프로그램을 잘 할 수 있었는데 그 형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Q. 김연경 선수와도 친해지지 않았나요?
A, 친해진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말을 걸어주신 거고 제가 팬 인거죠.
Q. 따로 연락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세요?
A. 그런 건 없어요.
Q. 요즘 인기를 가장 크게 실감할 때는 언제인가요?
A. 회사에 많은 팬 분들이 선물을 보내주시는데 그 선물들을 가지러 가면 차에 한번에 못 실어요. 뒷자석과 트렁크를 다 채워도 두 번을 왔다갔다 해야 될 정도로 선물을 보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기억에 남는 선물들이 있나요?
A. 제 사진들로 채워서 저를 그려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고 고맙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놔뒀어요.
Q. 팬들이 선물을 주고 인기를 실감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A.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죠, 이런 걸 만들어서 보내주는 게 쉽지 않거든요. 고생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느끼고 잘 쓰고 있어요.
Q. 김제덕 선수나 신유빈 선수의 경우 좋아하는 연예인들한테 연락이 오고 팔로우를 하는 등 성덕이 됐는데 안창림 선수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A. 저는 그런 건 없어요.
Q. 김연경 선수가 안창림 선수를 기대되는 선수로 꼽은 것도 성덕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A. 생각해 보니까 그게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그거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Q. 안창림 선수의 인스타그램 파란딱지는 직접 신청을 했나요? 아니면 저절로 생겼나요?
A. 모르겠어요. 저는 예전부터 붙어있었거든요.
Q. 올림픽 이후 SNS 팔로우가 얼마나 늘었나요?
A. 7~8만 정도 늘었어요.
Q. 코로나로 인해 올림픽이 연기됐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뭘하면서 보냈나요?
A. 저는 운동만 했어요.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인원이 모여서 훈련은 못했지만 둘이서 하거나 체력훈련을 하거나 근력운동을 하면서 훈련을 꾸준히 했어요. 언제 어디서나
Q. 코로나가 경기력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A. 잘 모르겠어요. 많은 선수들과 훈련을 하면서 도움은 됐고 다른 것들이 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괜찮았어요,
Q.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올림픽이 끝나고 뭘 하려고 했었나요?
A. 집에 가야죠. 2년 정도 못 갔으니까요.
Q. 도쿄올림픽을 하면서 가족들이 있는 일본에 있으면서 가족들이 연락도 많이 왔을 것 같아요.
A. 동생이 도쿄에 사는데 그래서 제가 원하는 반찬을 갔다주면 코치를 통해서 받고 그랬거든요. 수고했다고 연락도 왔어요. 평상시에는 연락을 많이 하는데 시합 전에는 연락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라서 시합 전에는 잘 안했어요.
Q, 동생 외에 올림픽 중에 가족을 만난 적도 있나요?
A. 못 봤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검사를 받고 격리를 하는데 격리장소랑 화장실이 멀었어요. 그 중간 길에 동생이 서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인사하고 잠깐 보고 그 이후로는 못 봤어요.
Q. 가족들도 한국에 같이 와서 생활을 할 생각은 없나요?
A. 없어요. 가족, 친척들이 일본에 있다 보니까 저희 부모님 직장도 일본에 있고 그래서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Q.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시합 끝나고 2~3시간 밖에 잠을 못 잤어요. 몸이 아팠거든요. 원래는 회복력이 좋아서 하루 정도면 다시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으로 회복이 되는데 그때는 2~3일을 누워있어도 너무 아팠어요. 아무래도 개인전에서 오랫동안 시합을 해서 타격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직접 참여를 해본 선수로서 생각했던 올림픽 무대와 어떻게 달랐나요?
A. 저는 생각했던 무대와 똑같았어요. 저는 금메달만 바라보고 왔고 모든 선수들이 금메달을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대표팀 급의 선수가 되면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저도 금메달을 따야만 했어요. 결과에는 만족을 못하지만 그때까지의 과정에는 후회가 없었을 뿐이죠.
Q. 아버지께서도 금메달을 못 따서 아쉬워 했다고 들었어요.
A. 저보다 승부욕이 강하셔서 1등 못하면 연락을 안 받고 그러시는데 익숙해서 괜찮아요(웃음). 이번에도 연락을 안 받다가 2~3일 뒤에 연락와서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Q. 다른 가족들은 뭐라고 하셨나요?
A. 유도를 했던 22년 동안 정말 수고했다고 해주셨어요.
Q. 유도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가라테 도장을 하셨기 때문에 가라테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해서 유도를 시작하게 됐어요.
Q. 한국 선수로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한국 국가대표가 돼서 메달을 딴다는 걸 입에 달고 살았어요. 말버릇처럼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국가대표가 돼서 금메달을 따는 거라고 했거든요. 어릴 EO부터 그렇게 말하다 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말이 현실이 되는 거죠.
Q. 국가대표가 됐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A.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더 잘해서 금메달을 따야 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잡고 해야지’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Q. 금메달을 따면 또 어떤 목표를 갖고 달려나갈 건가요?
A. 다른 목표를 세워야겠죠. 항상 살면서 죽을 때까지 목표를 세워서 꾸준히 올인하고 계획을 세워서 생활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서 유도를 그만두고 다른 걸 한다고 해도 많은 계획들이 있지만 확실한 건 없어서 파리올림픽 금메달만 보고 생활할 거예요.
Q.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에 왔었다면 좀 더 일찍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운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A. 그건 아니에요. 일본에서 좋은 지도를 받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 유도의 정신적인 기반을 잡았다면 고등학교 때는 기술적인 부분들이 형성 됐어요. 거기서 했으니까 지금의 기본기가 있고 스타일이 형성 됐던 거예요.
Q. 한국의 국가대표가 됐을 때 일본에서 함께하던 선수들은 어떤 말을 하던가요?
A. 남아달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일본에서 대학교 친구들이 제일 친했거든요. 지금도 연락하고 국제무대에서 많이 만나고 일본 가면 항상 보는 친구들이라서 그런 부분은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목표를 위해서는 해야 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만났나요?
A. 이번에 81KG에서 금메달 딴 애가 제일 친한 선수예요.
Q. 그 친구는 안창림 선수에게 어떤 말을 했고 안창림 선수는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줬나요?
A. 나가세라는 선수인데 눈물도 없고 감정적인 기복도 없는 선수거든요. 근데 거기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까 저도 감동을 받았고 저도 ‘너가 눈물 흘리는 걸 보고 나도 울뻔했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해줬어요. 리우올림픽 때 3등해서 금메달을 못 땄거든요. 그래서 ‘네가 금메달 따서 좋았다’고 말했고 걔도 “이번 시합 정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았어요.
Q. 안창림 선수가 조선학교를 나왔고 조선학교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했는데요. 한국에는 아직 이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조선학교를 다니면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가까운 일본 초등학교 애들이랑 싸우면서 살았죠(웃음). 애들이랑 아직도 자주 연락하고 제일 친한 친구들이에요. 저희끼리는 싸움이 정말 많았어요. 기가 센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싸웠는데 싸움을 부모님들도 말리지 않아요. 다 웃으면서 보고 계세요. 그래서 그때 정신적인 멘탈 부분에서 강해진 것 같아요.
Q. 대학생 때 한국에 왔고 제일교포로 인한 차별이나 문화차이로 인해 적응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반대로 조국에 와서 좋았던 일이나 가본 곳 중 좋았던 곳이 있나요?
A. 다양한 문화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고 일본과 한국이 옆나라 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차이가 엄청 심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신기해서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Q. 일본 친구들한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 있나요?
A. 제주도도 좋고 서울도 이태원, 압구정 같이 좋은 곳들이 많은 것 같아요.
Q. 안창림 선수의 20살은 어떻게 보냈나요?
A. 운동만 했어요. 저는 사실 운동만 해온 인생이에요. 운동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많은 경험들을 하면서 인간적인 성장을 했거든요.
Q. 운동을 하는 대신에 잃어버린 것들이 있나요?
A.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희생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건 저는 못해요. 희생한 것들은 정말 많은데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술도 안마시고 밤늦게 돌아다니지도 않고 가족들도 잘 못보는 게 희생이죠.
Q. 운동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A.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한국에 와서도 태극기를 달 때까지는 집에 안 간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Q. 책 추천이나 읽고 있는 책이 인터뷰나 방송에서 언급할 때 매번 바뀔 정도로 정말 많은 책을 읽는 것 같은데 책을 고를 때의 기준이 있나요?
A. 저는 항상 두가지 종류의 책을 동시에 읽어요. 소설과 자기계발을 보는데 소설은 일본 소설을 많이 읽다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보거나 대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들을 다 봐요. 자기계발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거나 지금은 캐다나의 한 교수님의 책을 읽고 있는데 제가 그 분의 강연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렇게 이슈가 되는 분들의 책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Q.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나요?
A. 한국에서는 장류진 작가님을 좋아하고 일본에서는 오노데라 후미노리,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요.
Q. 학창시절 썼던 유도일기가 큰 화제가 됐는데요. 지금 알려져 있는 유도일기 내용 외에 또 생각나는 내용들이 있으세요?
A. 라이벌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보다 더 열심히 하자고 썼고 사소한 걸 다 썼어요. 지금도 많이 쓰긴 하는데 책에서 봤던 좋은 글이나 이때 느꼈던 감정들을 적었어요.
Q. 지금 시점에서 그때의 유도일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A. ‘중2병이구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Q. 일기를 쓰면서 달라진 건 뭔가요?
A. 생각하는 걸 글로 남기다 보니까 나중에 다시봐도 ‘이때 이랬었구나’라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Q. 무슨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팬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안창림 선수의 삶에 있어서 눈을 떴을 때 그 하루가 두려웠던 적이 있나요?
A. 훈련이 힘들 때 ‘일어나서 운동해야지’라는 강박에 매달리면서 운동을 했어요. 근데 몇 년동안은 운동을 엄청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고 엄청 하기 싫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직업병이 있나요?
A. 저는 운동을 안 하면 싫어요. 많은 선수들이 쉬고 싶다고 하지만 저는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래서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에 와서 바로 다음날부터 운동을 했어요.
Q. 운동을 가장 오래 쉬어본 적은 언제인가요?
A. 리우올림픽 끝나고요. 2~3주 정도 아무것도 안했거든요. 그때는 패배가 너무 충격적이라서 다시 운동하기도 싫었고 운동을 하더라도 그 시합 생각이 나서 그랬어요.
Q. 그 순간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게 된 건 뭔가요?
A. 시간이 지나면서 패배에 대한 걸 소화할 수 있게 되고 왜 패배를 했는지 알게 되고나서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Q.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안창림 선수의 흑역사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흑역사는 아시안게임 때 눈물을 보인 거고 빛났던 순간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등 했을 때 태극기를 단다는 다음의 목표를 달성한 거라서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Q.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슬럼프라고 생각하면 슬럼프인거죠. 안 되는 이유가 뭐든 있어요. 정신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왜 안 되는지, 왜 성적을 못 내는지 이유가 항상 있거든요. 그걸 슬럼프라고 생각하는 건지, 과정이 잘못돼서 안 되는 건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슬럼프라기보다 실패를 하면 이 과정이 왜 안 되는지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고요.
Q. 평소 훈련이 없을 때 뭘 하면서 보내세요?
A. 책 하루종일 읽거나 산책하거나 자전거 타거나 커피 마시면서 영화보면서 보내요,
Q. 추천해줄 만한 영화 있나요?
A. ‘박치기’라는 영화 좋아요.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교토에 대한 얘기인데 조선학교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되게 좋아요.
Q, 안창림 선수가 꼽는 플레이리스트 TOP5는 뭔가요?
A. 2pac I'm soldier, Nicholas jaar Encore ,Drake Best I ever had ,Mac miller I'll be there ,Big sean Living single 이에요.
Q. MBTI가 어떻게 되세요?
A. 안 해봐서 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Q. 같이 운동했던 선수가 라이벌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안창림 선수에게 동료, 상대 선수는 어떤 존재인가요?
A. 저는 같은 체급이거나 이 선수와 대결을 할 것 같은 선수와는 말을 안 해요.
상대방에게 암바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친구면 힘을 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친해지지도 않고 말도 잘 안 해요.
Q. 은퇴 후 북유럽에서 지도자를 하는 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유럽 지도자로 정한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또 다른 꿈은 뭔가요?
A. 해외에서 다양한 문화를 보고 지도자로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육성하는 게 목표이긴 해요. 그중에 북유럽에 관심이 있는 거고, 북유럽에서 꼭 코치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Q, 또 다른 꿈이 있나요?
A.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재일교포 운동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걸 일로 해보고 싶어요.
Q,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언제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A.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육체적으로 안 되면 운동에 집중 못했을 때 그만둬야죠.
Q. 마지막으로 꾸준함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오랫동안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한국에 살면서 아무 눈치도 안보고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제가 제 자신을 제일 믿고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틀리던 안 틀리던 그 인생에 책임을 지는 건 자기이기 때문에 항상 아무 눈치 안보고 신경 안 쓰고 오로지 제 자신한테만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