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리 컬렉션]⑥ 부끄럽다고 외면한 '근대'...오롯이 복원할 기회 삼아야

202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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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기증한 청전 '무릉도원도·'백남순 '낙원'...근대사 큰줄기 읽을 실마리

국립근대미술관 만들어 항일 미술과.모더니즘에 대한 연구·사료 발굴 등 시급

청전 이상범의 ‘무릉도원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난 4월 1일은 1918년에 창립된 서화협회가 창설 3년 만에 첫 회원전을 연 날이다. 역사적인 100주년이었다.

서화협회는 일제강점기 민족 미술가들로 결성된, 자주성과 자부심 넘치는 미술가 단체였다. 하지만 이날을 기억하고 새기는 이는 없었다. 다만 강남의 한 화랑에서 이날을 기념해 작은 전시가 열렸을 뿐이다.

서화협회와 집안의 인연 때문에 가능한 전시였지만 화랑주의 증조부가 소장했던 가장품(家藏品)으로 구성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 대부분인 뜻깊은 자리였다. 동시에 1920~30년대 한국미술사를 복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전시였다.

작은 전시 하나도 이렇게 큰 의미를 갖는데, 이번 삼성가의 기증 문화재 예술품은 얼마나 큰 가치, 재화로서의 가치가 아닌 예술적 가치, 미술사·한국사적 가치가 클 것인가 생각해 보면서 긴장이 몰려왔다.

우리 근대사를 복원하고 그 공백을 메워줄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작품의 기증은 우리에게 그간 잊히고, 누락되었던 한국 근대사를 오롯이 복원하라는 천명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화협회 첫 전시의 100주년을 기리는 일은 응당 국립기관에서 해야 했던 것 아닐까.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이런 중요한 일을 남의 일처럼 미루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버릇이 생겼다.

바로 조선 말기 서구열강의 침탈에 이은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강점기 등 우리 반만년 역사 속에서 부끄럽다고 숨기고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대사 연구는 친일 단죄 쪽에 집중되었고, 당시 노도처럼 일었던 반일 독립운동, 자주적 자강운동, 보국안민, 애국계몽운동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우리가 ‘근대’를 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친일 단죄도 중요하나, 항일 미술과 지사 화가들의 활동은 더욱 중요하다. 엄혹한 근대기, 끊임없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지상주의, 주지주의, 탐미주의, 주정주의, 근대적 사고를 일깨워준 모더니즘적에 대한 연구와 사료 발굴도 필요하다.

하나 우리는 그간 근대를 외면하고 묻어두었다.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대임에도 말이다.

10위권 경제국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것은 우리 스스로 근대라는 뿌리를 튼실하게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선현의 말씀이 떠오른다.

백남순의 ‘낙원’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은 연구와 전시 하나도 한 개인과 가정사는 물론 근대를 규명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이를 재구성해 역사를 풍요롭게 만든다.

그런 점에 삼성가에서 기증한 미술품은 미술사 연구는 물론 대한민국의 근대사, 생활사를 복원할 귀한 사료이자 보석 같은 구슬이다. 이번 기증작품 중 한두 점만 가지고도 근대사를 따라가 큰 줄기를 읽을 수 있다.

청전 이상범(1897~1972)의 ‘무릉도원도’(1922)와 백남순(1904~1994)의 ‘낙원’(1937)은 같은 주제를 다른 양식과 조형언어로 다룬 작품이다.

우리는 두 작품을 통해 서세동점의 시대에 새로운 화풍을 어떻게 수용하고 나름대로 자기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청전의 ‘무릉도원도’는 전통적인 화원의 화법을 채택해 매우 세밀한 청록산수를 구사하고 있다. 그의 낙원은 시원하고 탁 트인 이상적인 풍수의 자연을 근경, 중경, 원경으로 나누어 깊은 산속까지 묘사하고 있다. 청록색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붉은 기운의 소나무 기둥들이 대비를 이룬다.

백남순의 ‘낙원’도 동양의 자연관을 기본으로 하지만 서양화와 전통회화의 구도를 절충해 그린 작품이다. 배경은 전통적인 산수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반라의 인간, 특히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는 남녀의 모습과 서양식 집, 이국적인 수목들이 있는, 나름 동서양이 절충된 이상향을 펼쳐놓았다.

청전의 작품에는 뱃사공이 혼자 외롭게 등장하지만, 백남순에게서 인물은 짝을 이뤄 등장하는 점도 이색적이다. 서양의 재료와 조형어법을 따르면서도 서양화의 내재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두 사람의 ‘낙원’에 대한 인식과 회화적·조형적 차이가 별나게 같은 듯 달라 미술사와 한국근대사에 많은 질문과 함께 답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니다. 청전이 1920년 23세의 나이에 ‘삼선관파도’를 그리자 이 소식을 접한 당시 거상 이상필이 청전에게 청한 그림이 이번 기증품 중 하나로 100여 년 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10폭 병풍의 ‘무릉도원도’다.

흥미로운 것은 미 육군대학을 나와 광산업에 투신한 실업가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컸던 이상필의 존재다.

그는 1911년 한성 중부 장교(현 중구 장교동)에 금은 장신구 등 공예품을 제작 판매하는 ‘조선금은미술관’을 설립했다. 이곳은 한국전통공예를 계승, 신식 디자인과 기법을 접목해 신구의 융복합을 꾀했다. 1914년 영업 부진으로 폐업하자 후일 화신백화점이 되는 신행상회를 세운 신태화가 인수한다.

이상필은 경성 서양 구락부의 회원, 한일은행 주주, 종로 상업회의소 특별위원 등을 역임한 실업계 거목이자 후원자였다. 김복진이나 이승만도 후원을 받았다.

이렇게 후원자를 좇아 보면 민족자본의 형성과 흥망, 근대 공예의 제작과 유통, 상업사까지 폭을 넓혀갈 수 있다. 한 점의 ’무릉도원도‘를 통해 마치 고구마를 캐듯 줄기만 잡아당기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근대사의 족적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품을 시대를 증언하는 목격자라고 하는 것이지만.

백남순은 1928년 유학차 파리로 향했다. 그의 자세한 행장은 조은정 박사가 이미 언급한 바 있다(본지 5월 14일자). 그의 남편 임용련은 평남 진남포 태생으로 배재고보 3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해 수배를 당하자 중국의 난징으로 몸을 피해 진링대학(金陵大學) 2년을 수학했다. 이후 임파(Phah Yim)라는 이름으로 중국 여권을 발급받아, 1923년 미국에 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진학했다. 이때 유진 프랜시스 세비지(Eugene-Francis Savage·1883~1978)에게 역사화와 벽화를 사사했다. 세비지가 예일대학으로 옮기자 임용련도 예일대학에 편입해 졸업했다.

그의 행적은 독립운동가의 족적과 초기 한인들의 미국이민, 유학생활 등을 추론할 귀한 자료다.

임용련과 백남순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유럽회화의 본령을 수학하고 귀국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 부부는 일제의 탄압으로 1936년 해체된 서화협회전은 물론 목일회 등 민족적인 미술단체를 통해 꾸준히 활동했다.

미술사는 단순히 미술품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지각적 자료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역사를 직조해 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국립근대미술관은 그 임무를 수행하는 핵심이다.

아픈 과거 일제 수탈의 현장도 보존·복원하면서 자부심 넘치는 우리 근대사는 외면만 할 것인가. 현대에만 몰두한다고 과거가 지워질까. 우리 근대사를 이렇게 비워둔 채 어찌 낯을 들어 조상과 후손들을 볼까?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이 시급한 이유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1회 광주비엔날레 대변인, 전문위원, 전시부 부장(1995)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 실장(1996~200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관장(2005~2006)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 총감독(2011)
대한민국 문화포장(1996)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수상(2005)
 

[사진=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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