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62) 감독이 14번째 영화 '자산어보'로 관객에게 돌아왔다. "이번이 마지막 영화일 수도 있다"라고 농담했지만, 모두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영화 '키드캅'을 시작으로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소원' '사도' '동주' '자산어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던 그는 "필모그래피가 중구난방"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아웃사이더'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왔던 그는 '자산어보'를 통해서도 극 중 인물, 그리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류 학서 '자산어보'의 서문 "섬 안에 덕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 (중략) 결국 나는 그를 초청하고 함께 숙식하면서 함께 궁리한 뒤, 그 결과물을 차례 지워 책을 완성하고서 이를 '자산어보'라고 이름을 지었다"라는 대목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과 바다 생물을 훤히 꿰고 있는 청년 창대가 만나 서로 스승이 되고 벗이 되는 과정, 그리고 '목민심서'와 '자산어보'의 길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 과연 소문난 '역사 덕후' 이준익 감독의 작품답다. 그는 '동주' 송몽규와 '박열' 가네코 후미코가 그러했듯, 이번 작품도 위대한 인물 옆에는 못지않게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렸고, 관객들은 또 한 번 지워졌던 인물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이준익 감독의 일문일답
벌써 14번째 영화다. '키드캅'부터 '자산어보'까지 이준익 감독을 끌고 올 수 있었던 '영화의 힘'은 무엇인가
- 모른다. 관성에 의해서 영화를 찍어오던 사람이다. 한 작품을 찍고 그다음 관성으로 가는 건 당연한 거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현상이 들쭉날쭉하다. 어떤 때는 이쪽, 어떤 때는 저쪽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일관된 사람인가?' 물어도 잘 모르겠다. 다만 성실하게 찍는 편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성실하게 해내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세대든 계급이든 간에
- 세대 간 소통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세대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보는 거다. 모두 개인차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경험, 지식의 체험 차이다. 개인 간의 차이가 더 크지 그것이 세대 격차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산어보'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 개인의 관점으로 근대성을 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동학이 눈에 들어오더라. 개인의 근대성이 농민으로 결집한 건데 왜 이름을 동학으로 지었을까 생각해보니, 앞 시대에 서학이 있더라. 그리고 그 앞에 박제가 등의 북학이 있었고. 여기에 당시 민중과 사대부의 근대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왜 남학은 없을까? 일본을 공부해야 했는데 안 해서 먹힌 게 아닐까. 이건 그냥 내 개인 생각이다.
서학에서 근대성을 찾으면 누가 제일 적합할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황사영이었다. 충북 제천 성지에 가서 황사영에 관한 논문을 쓴 신부님을 만나고 시나리오를 당시 작가랑 썼다. 다 쓰고 나니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더라. 그 사이 '사도'와 '변산'을 찍었다.
순간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초심을 찾으려 생각해 보니 아직 황서영이 내 가슴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그의 주변 사람들을 계속 생각했고, 정약전을 발견하게 됐고, 그의 곁에는 또 창대라는 청년이 있더라. 옳다구나 했다. 창대라는 청년을 통해 상대개념으로 그를 더욱더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약전이 보는 세상, 그의 눈은 이준익 감독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나?
- 정약전의 눈은 내 눈이 아니다. 정약용의 대척점인 셈이다. 비교의 가치이지 개인의 의지는 아니다. '목민심서'는 공무원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지침을 조리 있게 써놓은 거다. 정약용이 '인문과학'이라면 정약전은 '자연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의 의미를 연구한 것이다.
'상대 개념'으로 정약용이 아닌 창대를 내세웠다
- 창대의 역할이다.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또렷하게 만들수록 주제가 명확해진다고 보는데, 우리 영화는 창대라는 인물을 통해 두 개념을 확실하게 짚고 가려는 거다. '자산어보'와 '목민심서' 사이에서 고통을 느끼고 성장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 창대가 약전에게 "'자산어보'의 길을 가지 않고 '목민심서'의 길을 가겠다"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가 영화의 핵심인 셈이다. 관객 대부분이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았으니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영화 적재적소에 정약용의 한시가 등장한다. 유배길에 오른 정약전과 정약용이 갈림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은 '율정별'을, 술에 취한 장약전이 밤바다를 거니는 장면은 '봉간손암'을 각각 내레이션으로 전했다. 정약용이 군정의 횡포에 저항한 백성의 일을 듣고 개탄하며 지은 '애절양'을 이야기로 구체화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 몫은 물론, 죽은 사람의 몫으로도 군포를 걷어갔던 당시 사회상, 그 시대의 민생이 지닌 척박함이 '애절양'에 담겼다. 더는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양근을 자르는 남편, 이를 보고 목 놓아 우는 아낙의 모습이 절절히 전해진다.
이것은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쓰게 된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이 왜 망했냐, 아전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대 관료가 아전을 감싸면서 망한 것이다. 이를 경계하자고 주장한 것이 정약용의 '목민심서'인 셈이다. 그래서 '애절양'은 내레이션이 아니라 클라이맥스로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애절양'을 영상화하고 '자산어보'를 내레이션으로 함께 녹여냈다
- '애절양' 현장 속 창대의 모습과 약전의 내레이션을 녹여냈다. 갑오징어 이야기는 창대를 향한 약전의 헌사와도 같다. '뼈는 또한 말의 상처와 당나귀의 등창을 다스리는데, 뼈가 아니면 이것들을 고치지 못한다.',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 창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즉 성리학을 치유할 건 너밖에 없다는 의미다. 서서히 흐려지더라도 언젠가 맑은 물에 담기면 다시 선명해질 거라는 뜻이다. 사실 난 그 장면을 볼 때면 눈물이 나곤 한다.
가상의 캐릭터를 앞세운 현대물과 달리 실존 인물을 다루는 사극은 조심스러운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땐 분명 가공의 인물 때와는 다르다. 그래서 주요 배우들이 중요했다. 현대물이면 캐릭터마다 어떤 직업이 있지 않나. 배우가 해당 직업군을 직접 만날 수도 있고,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데 역사 속 인물은 만날 수 없다. 함부로 꾸밀 수 없고, 그래서 배우 개인의 설정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결국 배우마다 자기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설경구 안의 약전, 변요한 안의 창대처럼 말이다. 이런 건 감독이 어떻게 연기 지시를 내릴 수 없다. 배우 내면의 어떤 걸 끄집어낼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이준익 감독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나?
- 하찮은 사람의 빛나는 가치. '인싸'의 길은 재미가 없다. '자산어보' 속 창대도 '아싸'고, 흑산도는 완전 아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싸'라고 해서 그 삶이 무가치하다는 게 아니다.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인데, 그 삶을 소홀하게 된 것이다.
'자산어보'는 흑백 영화지만 3번의 컬러 장면이 나온다
- 밤하늘의 별을 볼 때, 밤송이 새(파랑새) 이야기를 할 때, 마지막 흑산도 장면이다. '자산어보'의 대표 시와 닿아있는 부분들이다. 상반되지만, 결국 하나의 가치를 향해 있는 장면들이다. 성리학과 서학은 적이 아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이고, '흑산'이 '자산'으로 보이면서…. '흑'과 '자'는 같은 검은색이지만 성분이 너무 다르다. 창대의 시선에서 컬러로 바뀌는 이유다.
영화 '키드캅'을 시작으로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소원' '사도' '동주' '자산어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던 그는 "필모그래피가 중구난방"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아웃사이더'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왔던 그는 '자산어보'를 통해서도 극 중 인물, 그리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류 학서 '자산어보'의 서문 "섬 안에 덕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 (중략) 결국 나는 그를 초청하고 함께 숙식하면서 함께 궁리한 뒤, 그 결과물을 차례 지워 책을 완성하고서 이를 '자산어보'라고 이름을 지었다"라는 대목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과 바다 생물을 훤히 꿰고 있는 청년 창대가 만나 서로 스승이 되고 벗이 되는 과정, 그리고 '목민심서'와 '자산어보'의 길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 과연 소문난 '역사 덕후' 이준익 감독의 작품답다. 그는 '동주' 송몽규와 '박열' 가네코 후미코가 그러했듯, 이번 작품도 위대한 인물 옆에는 못지않게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렸고, 관객들은 또 한 번 지워졌던 인물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이준익 감독의 일문일답
- 모른다. 관성에 의해서 영화를 찍어오던 사람이다. 한 작품을 찍고 그다음 관성으로 가는 건 당연한 거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현상이 들쭉날쭉하다. 어떤 때는 이쪽, 어떤 때는 저쪽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일관된 사람인가?' 물어도 잘 모르겠다. 다만 성실하게 찍는 편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성실하게 해내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는 꾸준히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세대든 계급이든 간에
- 세대 간 소통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세대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보는 거다. 모두 개인차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경험, 지식의 체험 차이다. 개인 간의 차이가 더 크지 그것이 세대 격차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산어보'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 개인의 관점으로 근대성을 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동학이 눈에 들어오더라. 개인의 근대성이 농민으로 결집한 건데 왜 이름을 동학으로 지었을까 생각해보니, 앞 시대에 서학이 있더라. 그리고 그 앞에 박제가 등의 북학이 있었고. 여기에 당시 민중과 사대부의 근대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왜 남학은 없을까? 일본을 공부해야 했는데 안 해서 먹힌 게 아닐까. 이건 그냥 내 개인 생각이다.
서학에서 근대성을 찾으면 누가 제일 적합할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황사영이었다. 충북 제천 성지에 가서 황사영에 관한 논문을 쓴 신부님을 만나고 시나리오를 당시 작가랑 썼다. 다 쓰고 나니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더라. 그 사이 '사도'와 '변산'을 찍었다.
순간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초심을 찾으려 생각해 보니 아직 황서영이 내 가슴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그의 주변 사람들을 계속 생각했고, 정약전을 발견하게 됐고, 그의 곁에는 또 창대라는 청년이 있더라. 옳다구나 했다. 창대라는 청년을 통해 상대개념으로 그를 더욱더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 정약전의 눈은 내 눈이 아니다. 정약용의 대척점인 셈이다. 비교의 가치이지 개인의 의지는 아니다. '목민심서'는 공무원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지침을 조리 있게 써놓은 거다. 정약용이 '인문과학'이라면 정약전은 '자연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의 의미를 연구한 것이다.
'상대 개념'으로 정약용이 아닌 창대를 내세웠다
- 창대의 역할이다.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또렷하게 만들수록 주제가 명확해진다고 보는데, 우리 영화는 창대라는 인물을 통해 두 개념을 확실하게 짚고 가려는 거다. '자산어보'와 '목민심서' 사이에서 고통을 느끼고 성장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 창대가 약전에게 "'자산어보'의 길을 가지 않고 '목민심서'의 길을 가겠다"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가 영화의 핵심인 셈이다. 관객 대부분이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았으니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영화 적재적소에 정약용의 한시가 등장한다. 유배길에 오른 정약전과 정약용이 갈림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은 '율정별'을, 술에 취한 장약전이 밤바다를 거니는 장면은 '봉간손암'을 각각 내레이션으로 전했다. 정약용이 군정의 횡포에 저항한 백성의 일을 듣고 개탄하며 지은 '애절양'을 이야기로 구체화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 몫은 물론, 죽은 사람의 몫으로도 군포를 걷어갔던 당시 사회상, 그 시대의 민생이 지닌 척박함이 '애절양'에 담겼다. 더는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양근을 자르는 남편, 이를 보고 목 놓아 우는 아낙의 모습이 절절히 전해진다.
이것은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쓰게 된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이 왜 망했냐, 아전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대 관료가 아전을 감싸면서 망한 것이다. 이를 경계하자고 주장한 것이 정약용의 '목민심서'인 셈이다. 그래서 '애절양'은 내레이션이 아니라 클라이맥스로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애절양'을 영상화하고 '자산어보'를 내레이션으로 함께 녹여냈다
- '애절양' 현장 속 창대의 모습과 약전의 내레이션을 녹여냈다. 갑오징어 이야기는 창대를 향한 약전의 헌사와도 같다. '뼈는 또한 말의 상처와 당나귀의 등창을 다스리는데, 뼈가 아니면 이것들을 고치지 못한다.',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 창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즉 성리학을 치유할 건 너밖에 없다는 의미다. 서서히 흐려지더라도 언젠가 맑은 물에 담기면 다시 선명해질 거라는 뜻이다. 사실 난 그 장면을 볼 때면 눈물이 나곤 한다.
가상의 캐릭터를 앞세운 현대물과 달리 실존 인물을 다루는 사극은 조심스러운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땐 분명 가공의 인물 때와는 다르다. 그래서 주요 배우들이 중요했다. 현대물이면 캐릭터마다 어떤 직업이 있지 않나. 배우가 해당 직업군을 직접 만날 수도 있고,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데 역사 속 인물은 만날 수 없다. 함부로 꾸밀 수 없고, 그래서 배우 개인의 설정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결국 배우마다 자기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설경구 안의 약전, 변요한 안의 창대처럼 말이다. 이런 건 감독이 어떻게 연기 지시를 내릴 수 없다. 배우 내면의 어떤 걸 끄집어낼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이준익 감독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나?
- 하찮은 사람의 빛나는 가치. '인싸'의 길은 재미가 없다. '자산어보' 속 창대도 '아싸'고, 흑산도는 완전 아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싸'라고 해서 그 삶이 무가치하다는 게 아니다.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인데, 그 삶을 소홀하게 된 것이다.
'자산어보'는 흑백 영화지만 3번의 컬러 장면이 나온다
- 밤하늘의 별을 볼 때, 밤송이 새(파랑새) 이야기를 할 때, 마지막 흑산도 장면이다. '자산어보'의 대표 시와 닿아있는 부분들이다. 상반되지만, 결국 하나의 가치를 향해 있는 장면들이다. 성리학과 서학은 적이 아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이고, '흑산'이 '자산'으로 보이면서…. '흑'과 '자'는 같은 검은색이지만 성분이 너무 다르다. 창대의 시선에서 컬러로 바뀌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