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교제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자진 신고한 1학년 생도 40여명을 중징계한 해군사관학교(해사)가 이성 교제 금지 규정 폐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해군 관계자는 5일 아주경제에 "현재 1학년 생도 이성 교제 금지 규정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시대 흐름과 인식 변화를 고려해 2019년부터 관련 사항에 대해 논의해 왔다"고 밝혔다.
해군 측은 생도 자치위원회인 명예위원회 결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진 신고라도 규정 미준수 책임을 생도 스스로가 지는 것 또한 '명예' 지키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란 설명이다.
이 규정이 1학년 생도를 보호하는 순기능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위계가 철저한 사관학교 특성상 상급 학년이 저지를 수 있는 강압적 교제 요구에서 신입 생도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육·공·3군사관학교는 해사와 마찬가지로 1학년 이성 교제를 금지한다. 다만 공사는 지난해 11월부터 1학년끼리 교제는 허용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불합리한 규정이다. 그러나 해군 주장처럼 '갑질' 교제 요구를 막을 수단이란 순기능이 존재한다면 폐지만이 능사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무엇보다 사건 보도 이후에나 "규정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해군 측 입장이 아쉽다. 시대 흐름과 인식 변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면피'에 방점이 찍히는 모양새여서다. 면피가 아니라면 변화를 줘야한다는 사실을 2019년에 인지하고서도 그간 실질적 조치가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자진 신고에도 중징계를 받는 게 현실이다.
2년간이나 실체적 제도 개선에 소홀했던 해군과 해사가 언론 보도 이후 손바닥 뒤집듯 '규정 폐지 검토'를 운운하는 건 갑질 교제 피해를 예상하고도 부작위(不作爲)하겠다는 것이다. 시대 흐름과 인식 변화를 이유로 해군과 해사가 부작위범(犯)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