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리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등 제 나름의 승어부에 다가가겠다”며 “최근 아버지를 여읜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새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18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승어부로 효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날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충격적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초격차는커녕 기본적인 투자를 할 시간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당장 이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반도체 비전 2030’은 올스톱될 위기다. 2019년 4월 이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비전을 발표하고 133조원의 투자 방안을 제시했다. 국내 R&D(연구개발) 분야에 73조원, 최첨단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각각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현재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1위 아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 만큼 앞으로 적극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2018년 2월 석방 직후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AI), 5G,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성장산업에 25조원을 비롯해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스마트폰과 반도체가 이건희 회장의 유산이었다면, 첨단 고사양 반도체와 이들 4대 성장산업은 이 부회장이 발굴한 삼성의 역점사업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재구속으로 인해 삼성은 새로운 역점사업을 추진할 기회를 잃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파기환송심으로 사법 리스크 부담을 덜어낼 경우, 삼성이 보다 의욕적인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특히 지난 2017년 전장기업 하만(9조3000억원) 인수가 사실상 마지막 대형 M&A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올해 전장사업 파이를 키우기 위한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재구속되면서 중장기적인 투자와 M&A는 당분간 이뤄질 가능성이 낮아보인다. 또한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 등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담보, 무노조 경영 및 세습 경영 등을 중단하며 달라진 ‘뉴삼성’을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답보상태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덩치가 큰 글로벌 기업일수록 총수가 중장기적인 대형 투자나 M&A 결정에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삼성의 경우 기존에 확정된 투자는 경영 로드맵에 따라 이뤄지겠지만 신규 대규모 투자와 M&A, 그에 수반되는 고용계획 등은 총수 결정이 중요한데, 이 부회장의 부재로 인해 이 부문은 올스톱 될 수밖에 없어보인다”고 전했다.